2兆 이상 분기 이익 내던 한전…脫원전 이후 '적자 늪' 허우적

'脫원전' 한전, 6299억원 사상 최악 적자

부채도 121兆 넘어 '눈덩이'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올 1분기 63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탈(脫)원전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전력·발전 공기업의 대규모 부실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전력은 1분기 기준 역대 최악인 629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남 나주혁신도시의 한전 본사. /한경DB
한전은 14일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6299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시장 추정치(-419억원)를 크게 넘어선 어닝 쇼크 수준이란 평가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등 자회사 평가 실적을 제외한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2조4114억원의 손실을 봤다.이 같은 적자폭은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또 작년 4분기(-7885억원)에 이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실적이다. 올 1분기 원전 이용률은 75.8%로 작년 동기(54.9%)보다 높아졌지만 예년의 80~90%에는 못 미친다.

한전 부채도 급증하는 추세다. 작년 말 114조1563억원이던 부채는 올 3월 121조2943억원으로 7조1380억원 늘었다. 작년 말 160.6%이던 부채비율은 3개월 만에 172.6%로 치솟았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가장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의 이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한 지속적인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분기 6300억 적자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건 원자력 발전을 줄이는 대신 훨씬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및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한전은 2013년 이후 2017년 3분기까지 분기별 2조~4조원대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을 내왔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 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구조 급속 악화

한전은 올 1분기에 6299억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의 영업손실이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자회사 실적을 감안하지 않은 별도 기준으로는 2조411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가의 영업손실 평균 추정치(-419억원)는 물론 최악의 전망치(-4543억원)보다도 나쁜 실적이다. 김갑순 한전 재무처장은 “원전 이용률이 개선됐는데도 국제연료 가격 상승으로 전력 구입비가 급증했다”며 “특히 원전의 대체 발전원인 LNG 가격이 계속 뛴 게 결정타였다”고 설명했다.작년 1분기 54.9%에 그쳤던 원전 이용률이 올 같은 기간에 75.8%로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년의 평균 80~90%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전 전력통계에 따르면 작년 원자력 발전의 평균 구입단가는 ㎾h당 62.05원으로, LNG(122.45원)와 재생에너지(168.64원)보다 훨씬 저렴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LNG 발전으로 원전을 대체하려 했던 게 한전 적자의 주요 원인”이라며 “원전 이용률이 낮아지면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는 부작용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전 부채가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한전 부채는 지난 3월 말 기준 121조2943억원으로, 3개월 만에 7조원 넘게 늘었다. 부채비율은 2014년 이후 최고인 172.6%로 치솟았다. 한전 관계자는 “적자가 났더라도 설비 투자는 늘려야 하기 때문에 채권 발행을 확대할 것”이라며 “당분간 부채비율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전기요금 인상 불가피할 듯

한전은 작년에도 연결재무제표 기준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조1612억원 급감했다. 탈원전 정책 후 2년간 날아간 영업이익만 12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작년 상반기 김종갑 사장 취임 직후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갔지만 원전 이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한 흑자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내부 얘기다. 한전 관계자는 “원전 이용률이 1%포인트 낮아질 때마다 19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구조”라며 “정부 방침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등 환경 비용도 늘려야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올해 원전 이용률은 평균 77.4%에 그칠 것이란 게 한전 측 예상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과도하게 개입해 다수 원전을 예방점검 명목으로 세워놓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원전 1기를 하루 멈추고 LNG로 대체할 경우 한전이 매일 10억원씩 손실을 본다”고 설명했다.한전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는 만큼 결국 전기요금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전은 2008년, 2011년, 2012년 등 영업손실을 기록했거나 적자를 낸 이듬해 일제히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다만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2030년까지 10.9%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며 “한전이 적자를 냈다고 당장 전기요금을 올리는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