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수천억 부었지만 버스대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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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항복으로 일단 진화서울·인천 등 전국 주요 시내버스 노동조합이 15일로 예고했던 파업을 속속 철회하면서 출근길 ‘버스대란’은 피했다. 이번 버스노사 협상에선 기존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오는 7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앞두고 제기된 인력 충원 등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노조 측에서는 7월까지 추가 인력이 1만5000여 명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은 채 협상이 타결됐다. 오히려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추가 채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규석 한국운수산업연구원 부원장은 “초단기적으로 급한 불만 껐을 뿐”이라며 “인력 충원이 안 되면 당장 7월에 버스 대란이 다시 불거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 '시민만 봉'
계속되는 파업 압박
대부분 지역에서 타결
15일 새벽까지 이어진 노사 협상에서 대구 인천 광주 전남 경남 서울 부산 울산 순으로 8개 지방자치단체 버스 노사가 임금·단체협약을 타결지었다. 경기 충북 충남 강원 대전 등 5개 지역 버스노조는 파업을 보류했다.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임금 3.6% 인상, 2021년까지 정년 만 61세에서 63세로 단계적 연장, 학자금 등 복지기금 5년 연장 등의 조건에 합의했다. 월평균 422만원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버스기사 임금을 자랑하는 서울이 임금 인상률 3.6%에 합의하면서 다른 지역 노조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시는 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증가를 예산으로 다 떠안는다. 지난해에만 준공영제 재정지원액으로 5402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서울시는 이번 임금 인상만으로 올해 333억원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임금 인상을 합의한 부산(300억원), 인천(170억원), 대구(190억원)시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재정지원액을 더하면 1000억원에 달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비용은 지금 단계에서 추계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수도권 광역버스의 준공영화로 인한 정부 부담금, 버스기사 임금 인상에 따른 지자체 부담금, 그리고 향후 인력 채용에 들어갈 고용기금 부담금 등을 모두 합하면 수천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국민 설득 없이 요금인상 카드 내놔
경기 버스노조는 경기도가 버스요금을 시내버스는 200원, 광역버스는 400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추가 교섭 필요성이 생겼다며 임단협 조정 기간을 이달 29일까지 연장하고, 파업을 잠정 유보하기로 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먼저 지자체에 버스요금 인상을 권고하고 나섰다. 국토부는 노조가 요구하는 인력 확충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줄어드는 임금 보전을 위해선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었다.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잡은 버스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정작 임금 인상에 따라 늘어나는 재정 투입과 요금 상승의 부담을 지는 국민 설득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요금 인상 방침을 밝힌 경기 충북뿐 아니라 세종 경남 전남 등도 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민들은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경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모씨(38)는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데, 시내버스 요금을 200원 인상하면 매일 왕복 400원씩, 한 달에 1만원 가까이 교통비용이 늘어난다”며 “대출을 몇천만원 더 받아 역세권으로 이사 가고 교통요금 인상분만큼 매달 대출이자를 더 내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준공영제, 회계부정 심각”
정부는 이번 버스파업에서 서울시 등 8개 지자체가 도입 중인 준공영제 대상 버스를 늘리는 방식으로 버스기사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국토부 관할 M버스(광역직행버스)와 자치단체 관할 일반광역버스(빨간 버스)에 준공영제를 추진한다. 장기 과제였던 광역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소요 재원도 산정하기 전에 서두르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준공영제가 ‘만능키’처럼 여겨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버스회사 수입이 표준운송원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보조금을 주는 구조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며 “회계부정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추가영/박진우/이인혁/노유정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