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47) "엄마 언제 와?" 날 더욱 피곤에 찌들게 했던 그 전화

워킹맘 이미나 기자의 육아 에세이
한경닷컴 포스트 연재
육아 매체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만남을 갖고 있는 후배가 별안간 카카오톡을 보내왔다. (참고로 후배는 지금 또 다른 육아 월간지 '앙*'의 기자로 근무 중이다)

"선배~ 다음달 잡지에 '육아의 고단함을 한 방에 날려준 아이의 '산삼' 멘트를 싣는데 선배도 사연있으면 좀 보내주세요.""우리 애들은 나에게 그런 멘트를 전혀 해주지 않아. 매일 화만 돋구는 걸.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볼게"

집에 와서 애들이 요즘 내게 어떤 힘을 주는 말을 해줬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산삼과도 같이 내 피로가 싹 풀릴만한 말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어제만 해도 날씨가 좋아서 아이들 데리고 나갔는데 큰 아이는 "왜 이렇게 멀리까지 산책을 가자고 해서 날 힘들게 하냐"고 화를 냈고 작은 아이는 자기가 먹으려고 고른 아이스크림을 내가 딴 사람에게 줬다고 눈물바다가 돼서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사느라 편의점을 뒤지는 등 진땀을 흘려야 했다.

'도저히 그런 멘트는 없구나' 포기하려던 순간.

아이들이 어릴 때 한창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카**스토리가 떠올랐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이다 블로그다 열심히 하느라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곳에는 아이들 어린 시절의 다양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아 진짜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렇게 귀여울수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내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4~5살 무렵의 아이들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플만큼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았나. 향수에 젖어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나는 엄마가
산덩어리만큼
좋아요."

기억을 더듬어 봤다.

큰 아이가 6살, 작은 아이가 4살이었던 그때, 난 새로 생긴 육아매체 키즈맘으로 파견이 돼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있었다.

게다가 뭘 모르고 추진력만 넘치던 내가 온라인 뉴스에 그치지 않고 지면잡지까지 만들어보겠다고 설쳐대는 통에 팔자에도 없는 야근을 매일 하던 시절이었다.
엄마바라기 시절의 아이들. 당시 아이들은 지금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하고 항상 보고싶어 안달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잡지사 다니는 친구들이 마감시즌이라 야근한다고 하면 '미리 미리 좀 해놓으면 될걸. 왜 그렇게 맨날 닥쳐서 일을 하나' 답답하게 생각했던 무지한 나였다.

내가 스스로 삽을 들고 무덤을 팠다고 해야할지. 막상 잡지를 만들자 작정하고 보니 마감 때 1주일 이상 야근은 기본이고 집에는 새벽 2~3시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한창 엄마를 찾아대던 그때 육아를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기사를 쓰느라 정작 내 아이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것.

또 다시 돌아온 마감 시즌, 연일 이어지는 야근.

일은 쌓여있는데 아이는 자꾸만 '엄마 언제와? 빨리와' 전화만 벌써 몇 통째인지.

'휴 나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고.'

또 울리는 전화벨소리. 이제는 은근 짜증도 나서 버럭하는 나 자신을 말릴 힘이 없었다.

"엄마가 집에 안가고 싶어서 회사에 있는게 아니라고! 나도 가고싶은데 일이 안 끝난 걸 어떡하란 거야! 이렇게 자꾸 들볶으면 나 힘들어서 금방 할머니 되는데...엄마 늙어서 할머니 돼도 좋아?"라고 쏘아댔다.

풀이 죽는가 싶었는데 왠일인지 3일째 퇴근 독촉 전화를 안한다.

그러다 하루 일이 일찍 끝나서 밤 10시에 귀가했다.

아이는 문앞에 서서 "엄마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는거야?"라고 원망섞인 눈길을 보낸다.

전화하고 싶은데 엄마 늙는다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웠을 아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또 야근이라 먼저 전화를 했다.

아이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준 사실에 기뻐하며 "난 엄마가 산덩어리만큼 좋아요"란다.

"나도 네가 산덩어리만큼 좋아."

그래 내가 산더미 일 끝내고 얼른 갈게.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 아이를 만나니 괜히 눈가가 뜨거워진다.

지금은 키즈맘 파견이 끝나 본사로 돌아온 지 3년 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칼퇴를 할 수도 있고 야근도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줄어든 것 같아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어버이날이라고 아이가 처음 만들어 온 카네이션. 그땐 이게 뭐라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었는데...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 소중함을 잠시 잊고 있었던 내게 '산삼 멘트' 요청이 그야말로 약이 됐다. 아이들의 '엄마 이것 좀~!!!!' 귀찮게 불러대는 목소리가 오늘은 조금 덜 귀찮은 느낌. 이 기분이 며칠이나 갈런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