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금융에 맛들인 증권사들
입력
수정
지면A24
1년새 채무보증 37% 증가증권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금융을 공격적으로 확대한 결과 채무보증(우발채무)액이 1년 새 37%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에 ‘부동산 리스크(위험)’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고삐를 죄고 나섰다.
돈 되는 PF 대출 '공격 확대'
일부 업체 수익비중 70% 넘어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24곳의 채무보증 잔액은 작년 말 기준 38조1652억원으로 1년 전인 2017년 말(27조8091억원) 대비 37.2% 늘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채무보증액이 6조573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NH투자증권(4조8061억원), KB증권(3조9793억원), 한국투자증권(3조939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작년 말 채무보증액 1조원을 넘긴 증권사 9곳 중 미래에셋대우(3조2839억원)를 제외한 8곳의 채무보증액이 전년보다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주요 증권사가 국내외 부동산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채무보증액이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채무보증액 중 부동산 PF 사업 비중이 작년 9월 말 기준 80%에 달했다.증권사들이 부동산금융 확대에 나선 것은 ‘돈’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PF 대출의 경우 주로 대출채권의 신용을 보증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증권사는 사업장 부실이 표면화되지 않는 이상 직접 현금 지출 없이도 계약당 3% 안팎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메리츠증권 등 부동산금융 비중이 높은 일부 대형사들이 지난 수년간 안정적인 수익을 낸 배경에는 이런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에서 부동산금융 수익비중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지자 과도한 ‘쏠림 현상’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내 부동산 경기가 2018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부동산금융이 계속 팽창할 경우 자칫 증권업계 전반의 부실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당국도 올해 중점검사 사항으로 부동산금융 등 리스크관리 여부를 지목하고 주요 증권사로부터 국내외 부동산 투자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에 들어가는 등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날 각 증권사 감사부서 및 준법감시 관련 임직원을 소집해 부동산 투자 리스크 관리방안을 논의했다.이 자리에서 금감원은 지난해 대형사는 물론 일부 중소형사에서 부동산 관련 채무보증 규모가 크게 늘어난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대신증권의 경우 채무보증액이 2017년 1224억원에서 지난해 말 8759억원으로 615.6% 급증했다. 키움증권(149.4%)과 유안타증권(96.5%) 등도 1년 새 채무보증액이 크게 늘었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증권사에서 부동산금융이 팽창한 원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통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증권사 부동산금융 담당 임원은 “과거 PF 대출을 주도해온 은행과 보험사 등에 대한 규제가 크게 강화된 데 따른 ‘풍선효과’로 증권사에 자금 수요가 쏠린 측면도 있다”며 “이런 고려 없이 무턱대고 규제에 나서면 또 다른 영역에서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