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존엄성을 인식한 인간은 현혹되지 않는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일상에서 무례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불편한 감정을 더 크게 느낀다. 이 감정을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감정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독일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인 게랄트 휘터는 이럴 때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공격성을 노출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한계를 쉽게 드러내고 또다시 같은 취급을 받는 상황을 야기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로해줄 만한 일을 해서 기분을 전환하려는 것이다. 휘터는 이것도 상처 입은 존엄성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존엄함을 인식한 사람은 타인의 무례한 행동에도 침착하고 관대하게 반응한다”며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휘터는 저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진정한 존엄성을 누리면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존엄이란 법적 권리가 아니라 뇌의 본능적인 감각”이라고 말한다. 우리 뇌는 관계 속에서 구조화되는 사회적 기관으로 평생 동안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존엄이란 신념 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타고난 존엄의 감각을 회복하려면 개인과 사회가 노력해 삶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가족과 교육기관, 일터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존엄성을 끊임없이 인식하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보호와 소속감, 창의력과 자율성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은 존엄이란 신념을 확고히 구축하고 외부의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는다”며 “나아가 스스로 잠재력을 일깨워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품위 있는 죽음에 앞서 존엄한 삶을 먼저 사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셜, 232쪽, 1만48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