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변론권, 국민을 위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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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jwpark@seoulbar.or.kr >한 여성 변호사가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로 도움을 청해 왔다. 국선변호를 맡은 구속피고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고 있어 고통이 크다고 했다. 이 피고인이 여성 변호사에게 보낸 협박 편지에는 언어 성추행뿐 아니라 출소하면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필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피고인을 찾아가 엄중 항의하고 여성 변호사 개인정보가 기재된 문서를 전부 파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협박 편지를 봤을 때 느낀 참담한 심정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협박을 당한다면 앞으로의 변호인 생활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변호인에겐 변론권이 있다. 국가 또는 제3자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변론할 권리를 뜻한다. 이 여성 변호사는 변론권을 침해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 기본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이는 변호인의 변론권을 보장해야 얻을 수 있는 권리다. 즉 변호인의 변론권은 변호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권리다.변론권이 침해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변호인과 의뢰인 간 형사 성공보수 약정이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어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형사사건에서 변호인을 선임한 의뢰인은 충실한 변론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결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대로 형사 성공보수 약정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변호인과 과다하지 않은 성공보수를 정하고 충실한 변론을 받는 것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수사기관의 변호사 사무실과 기업 법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다.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비밀유지 특권은 의뢰인과 변호사의 의사교환 내용 등을 공개하거나 개시를 요구당하지 않을 권리다. 이를 통해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사실관계를 충실히 전달해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의뢰인인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은 의뢰인과 변호사 간에 형성된 신뢰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의뢰인의 정보를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권익을 직접 침해하는 것이다.
변론권은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전제로서 변호사들의 변론권이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법률 서비스를 위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