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전 재정, 선택의 문제 아닌 국가의 기본 책무다

정부가 어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확장 재정’ 방침을 재확인했다. 예산지출 확대, 공공의 기능 확충을 통해 계속 ‘큰 정부’로 가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 부처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까지 대거 참석한 이 회의를 주재하며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재정전략회의는 국가가 쓸 수 있는 재원의 동원과 운용을 모색하는 정부의 연례행사다. 5년 단위의 재정운용 계획이 수립되고 지출방향도 정해진다. 국회에 계류 중인 추가경정예산안을 여당과 정부가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예산도 지난 2년간의 ‘슈퍼예산’ 연장에서 편성될 게 확실시된다.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래 ‘팽창 예산’ 일변도여서 정부와 여당 쪽에서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말은 들어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작은 쉬워도 중단은 힘든 게 정부지출이라는 점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출 구조조정이 힘든 게 복지예산만이 아닌 것이다. ‘혈세로 막았다’는 비판을 받은 이번 전국 버스 분규에서 남긴 큰 걱정거리도 정부 지원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자리안정자금’의 사례를 봐도 지난해엔 남아돌아 정부가 무리하게 신청을 독려했지만 올해는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확장 재정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지금 같은 불황국면에서 재정의 역할과 효과를 스스로 반감시켜버렸다. 최악의 실업대란과 양극화, 성장동력 고갈에 대응할 정책의 비상카드를 일상화해버린 채 재정의존증만 키운 격이다. 그러는 사이 건전 재정을 논하기에는 경제여건만 나빠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건전 재정은 중요하다.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으로 진짜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다. 한국 같은 개방형 경제에서는 언제, 어디서 ‘블랙 스완’이 위기로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던 것은 건전한 재정이라는 안전 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어제 ‘2020년대 성장률 1%’라는 저성장 보고서를 내면서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 재정정책의 반복은 부담 요인’이라고 경고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