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詩) 쓰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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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mkpark@forcs.com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은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창업 후 5년을 버티는 기업은 30%도 되지 않고,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10% 미만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점점 짧아져 대기업을 포함해 15년 이내에 과반수의 기업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혁신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10년, 20년을 견딘 중소기업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지인 중에 시(詩)를 쓰는 한 여성 대표가 있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옆사람들을 기운 나게 하는 그는 친환경 탈취제를 생산하는 제조업을 20년 이상 운영해 온 베테랑 CEO다.그도 지난 20년간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든 여정을 걸어왔다. 어렵게 개발한 친환경 방향제와 탈취제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곧이어 저가 모방품이 등장했다. 주요 거래처마저 등을 돌렸다. 믿었던 직원의 배신 때문이었다. 공장을 증축하던 중 벌어진 일이라 자금 압박까지 더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뇌출혈로 쓰러져 세 차례의 대수술까지 받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제품과 기술, 노하우, 강한 의지가 있었다. 회복 후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과 희망을 느낀 그는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러나 얄밉게도 위기는 그의 발목을 계속 붙잡았다. 1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앗아간 공장 화재 때도 그는 다시 일어섰다. 힘들 때마다 곁에서 함께 울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우울함과 허탈함보다는 ‘나는 여전히 가진 것이 많은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 재기에 성공한 그가 공장을 확장해 이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언젠가 그에게 시를 쓰게 된 연유를 물은 적이 있다. 사업을 하면서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순간, 꿈을 포기하지 못해 지른 외마디 비명이 시가 됐다고 했다. 20년을 그냥 버텨온 게 아니라 제품 개발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도전하며 살아온 그가 매우 자랑스럽다.
이것이 비단 그만의 이야기일까? 20년, 30년을 버텨온 중소기업들은 저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스케일업을 통해 대한민국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의 시 중 이런 구절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용기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