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봉한 '버스대란', 주52시간제부터 손봐야

"요금인상·혈세로 막은 버스파업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 일률 적용
업종·사업장별 유연대응케 해야"

박영범 < 한성대 교수·경제학 >
지난 15일로 예정됐던 전국 버스 파업이 노사 협상 타결이나 파업 보류로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권과 공무원의 무능·무책임이 큰 실망을 안겨줬고 향후 파업사태가 재연될 여지도 커져 걱정이 앞선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3월 ‘주52시간 근로제’를 도입했을 때부터 우려됐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버스회사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 1만여 명이 넘는 추가적인 버스기사 채용 및 양성 등에 대한 세밀한 대책이 시행 전에 마련됐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노·사·정 합의문 하나 발표한 것이 고작이었다. 버스요금 인상, 준공영제 확대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버스 노조 합의 내용을 보면 국민과 버스 이용객에게 부담을 전가할 명분을 쌓기 위해 1년3개월 동안 관계자들이 손놓고 버스 파업을 기다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특히 이미 준공영제가 실시돼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임금 감소 요인이 없고, 기사 처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아 다른 지자체 버스 기사들이 선망하는 서울시까지 버스기사 임금을 3.6%나 올리기로 한 것은 시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가 아닌가 싶다. 서울시는 지난해 버스회사에 5400억여원을 지원했는데, 이번 임금 인상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300여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서울 등 8개 지자체가 버스 회사에 대고 있는 재정지원금은 연간 1조원이 넘는다. 준공영제가 다른 지자체로 확대되면 추가적으로 1조30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합의로 인해 요금을 인상하거나 상당 규모의 지원금을 추가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서민의 발’인 버스 기사 처우가 좋아지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분을 보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등 이른바 투잡을 뛰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버스기사 임금 감소분을 회사 차원에서 보전하는 논의 없이 혈세로 지원하거나 서민 주머니를 축나게 하는 요금 인상을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앞으로 추가 채용이 필요한 버스기사 수에 대한 지자체와 정부 생각도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버스기사 부족으로 노선이 단축되거나 폐쇄돼 시민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주52시간제가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내년에 올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신규 채용 버스기사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강화해 시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준공영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립유치원에 도입된 국가회계 시스템인 에듀파인과 같은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자체의 재정 지원 확대 및 요금 인상으로 잠재운 파업, 충원이 필요한 버스기사 수조차 불확실한 상황은 주52시간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밀한 연구 없이 도입됐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계도기간이 끝나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주52시간제가 ‘제2의 최저임금 사태’로 발전되지 않도록 하려면 서둘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대입 시즌의 입학사정관, 방송 종사자, 연구개발(R&D) 인력, 정유업, 조선업, 정보기술(IT)업계, 게임산업계 등 주52시간제가 파열음을 낼 가능성이 큰 업종이 버스회사 말고도 많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선택근로제 확대, 특례 업종 재검토 등을 통해 업종별·사업장별 특성에 따라 기업이 보다 유연하게 주52시간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