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홍 미국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 "로봇이 꼭 사람 모양일 필요 있나…인간 이롭게 하면 그만"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 강연자 인터뷰

'뛰는 로봇' 아틀라스 비밀 첫 공개
'맨몸'으로 UCLA 간 사연
휴머노이드가 전부 아니다
“긍정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Optimism always finds a way).”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미국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의 인생 모토다. 이 글귀는 길거리 간판, 공항, 버스 등 로스앤젤레스(LA)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그의 눈부신 연구성과에 보내는 헌사다.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찰리’, 재난현장 구조로봇 ‘토르’ 등을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한 홍 교수가 기상천외한 로봇을 또 내놨다. 이번엔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처럼 1m가량 점프하고, 태권도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하는 4족 보행로봇 ‘알프레드2’다. 그가 개발한 액추에이터(모터 감속기 등으로 구성된 부품군)를 적용했다.

홍 교수는 오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에 참석해 ‘로봇은 꼭 사람처럼 생겨야 하나요?’를 주제로 강연한다. 주체할 수 없는 흥과 에너지로 가득한 그를 20일 서울에서 만났다.
데니스 홍 UCLA 교수는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로봇과 관련한 대중 강연을 위해 자주 한국을 찾는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아틀라스는 ‘화학적 폭발’로 백텀블링홍 교수는 “기존 모터와 감속기로는 (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처럼) 뛰는 로봇을 절대로 만들 수 없다”며 “완전히 새로운 액추에이터를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특수 전자기 액추에이터, 일명 ‘베어(BEAR)’다. 베어는 로봇 팔다리에 탄력을 주고 힘 조절이 가능하도록 한 ‘마법의 인공근육’이다.

침팬지처럼 두 발 또는 네 발로 걷고 뛰는 ‘알프레드2’.
알프레드2는 홍 교수가 개발한 베어를 처음으로 장착한 로봇이다. 베어 덕분에 알프레드2는 토끼처럼 뛰거나 강아지처럼 걷고, 다리를 ‘V’자로 치켜올려 폴짝 뛴다. ‘파쿠르(장애물 뛰어넘기 훈련)’를 하고 백텀블링하는 아틀라스 못지않다.홍 교수는 세계적으로 베일에 싸인 아틀라스의 비밀을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원래 유압식 액추에이터는 실린더 내 기름을 밀어올려 힘을 내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기름을 ‘화학적으로 폭발’시키는 유일무이한 액추에이터를 개발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대표인) 마크 레이버트가 귀띔해줬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이상은 안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언론에 처음 말씀드리는 겁니다.”

공대 학부생들 ‘신선한 사고’ 독려해야

홍 교수는 미국 태생이지만 초·중·고를 모두 한국에서 나왔다. 고려대 89학번으로 입학했으나 열악한 환경에 실망해 미국으로 떠났다.“로봇을 연구하고 싶다”며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렸으나 “학부생이 무슨 연구냐”며 문전박대당한 뒤 크게 낙담했다. 이 경험은 ‘학부생이 먼저’라는 그만의 철학을 갖는 계기가 됐다. 홍 교수는 “(대학원생보다) 학부생에게 좀 더 관심을 두고 이들의 창의력을 폭넓게 지원해야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존 유이커 미 위스콘신대 교수에게서 기계공학의 기본을 배웠다. 또 유이커 교수의 제자인 레이먼드 시프라 교수가 있는 퍼듀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홍 교수는 “요즘도 내 제자들과 함께 유이커, 시프라 교수와 자주 만난다”며 “주변에선 ‘미국 로봇 가문 4대(代)’라고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박사과정 직후 버지니아공대의 러브콜을 받아 옮긴 뒤 내리 11년을 일했다. 로멜라(로봇공학연구소) 명칭이 탄생한 곳도 여기다.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 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기지(奇智)를 발휘한 일화는 유명하다. 로봇 눈에 있는 카메라를 뽑아 곳곳에 던져놓고, 프로그램을 급조해 동영상을 찍으며 어디로 대피할지 학생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이는 당시 현지 언론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꽃길을 주로 걸었을 법한 홍 교수에게도 큰 시련이 있었다. 2013년 말 UCLA로 옮기려는 그를 붙잡기 위해 버지니아공대 측은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이미 UCLA 측과 계약이 끝났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괘씸죄에 걸린 홍 교수는 찰리, 토르 등 그동안 개발한 로봇과 장비, 인력 모두를 빼앗겼다.

그가 개발한 시각장애인 전용 자동차 ‘브라이언’도 버지니아공대에 두고 나와야 했다. 2011년 선보인 브라이언은 이용자가 앞을 못 보더라도 특수 장갑과 좌석 등을 활용해 수동으로 운전할 수 있게 한 자동차다. 워싱턴포스트 1면을 장식한 이 자동차는 홍 교수가 떠난 뒤 버지니아공대에 ‘박제’됐다. 그 누구도 홍 교수를 대체해 연구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위기였지만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새 연구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기어오르는 6족 거미로봇 ‘실비아’.
휴머노이드가 아니어도 좋다

UCLA로 이적한 뒤 그가 내놓는 로봇들은 말 그대로 ‘괴랄(괴상하고 발랄하다란 뜻의 신조어)’해졌다. 헬륨 풍선에 마치 소금쟁이 같은 다리를 붙인 로봇 ‘발루’, 침팬지처럼 두 발 또는 네 발로 걷고 뛰는 알프레드2,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기어오르는 6족 거미로봇 ‘실비아’ 등이다. 이전에 그는 휴머노이드를 주로 개발했다. 홍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느리고, 무겁고, 비싸고, 잘 넘어진다”며 “로봇은 사람 모양으로 설계할 필요 없이 사람을 위해 만들면 그만”이라고 했다.

■데니스 홍 교수는…美 최초의 휴머노이드 개발한 로봇 공학자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찰리’를 개발한 세계적인 로봇공학자다. 현지에서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를 낸 과학자’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불린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미 버지니아공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찰리를 비롯해 재난현장 인명구조용 휴머노이드 ‘토르’, 로봇공학 교육용 휴머노이드 ‘다윈’, 시각장애인 전용 자동차 ‘브라이언’ 등을 만들었다. 2014년 UCLA로 옮긴 뒤 ‘로봇은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기상천외한 형태의 작업용 로봇(나비·실비아·발루·헥스·알프레드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1971년생
△1991년 고려대 기계공학과 3학년 중퇴
△1994년 미국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9~2002년 미국 퍼듀대 기계공학 석·박사학위 취득
△2003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로봇메커니즘연구소(로멜라) 소장
△2007년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젊은과학자상, 2011년 타임지 최고 발명품상 수상
△2014년~ UCLA 로멜라 소장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