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관리앱' 中에 수출했지만…한국선 규제 탓 '반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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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탈출! 바이오가 희망이다지난해 5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뷰노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첫 의료 AI인 뷰노메드 본에이지 시판허가를 받았다. 1년이 지났지만 이 기기를 이용해 환자에게 받은 추가 진료비는 없다. 의사들이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치료효과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설자리 없는 혁신 헬스케어
非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첫 기준
'헬스케어 가이드라인' 또 논란
한국은 헬스케어 서비스를 가로막는 제약이 많은 나라로 꼽힌다. 환자의 혈당·혈압을 모니터링하며 음식·영양처방을 하다가 수치가 나빠지면 경고하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도 이를 의료서비스와 연계할 수 없다. 꽉 막힌 보건의료 규제가 혁신기술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혼란만 키운 헬스케어 가이드라인
보건복지부는 20일 의료기관 밖에서 할 수 있는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동안 국내 헬스케어 업체들은 의료법 기준이 모호해 사업 가능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토로해왔다. 이날 복지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이 경계를 긋는 국내 첫 번째 기준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지나치게 제한적인 데다 그 범위마저 모호해 환자들이 혜택을 받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내에서 의사 개인의 판단이 포함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진료실 밖에서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의사가 모바일 앱 등을 활용해 먼 거리에 있는 환자의 혈당·혈압 수치를 주기적으로 체크(원격 모니터링)하다가 혈당수치를 낮추라고 조언하거나 인슐린 권고 범위를 알리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당뇨 고혈압 환자를 치료한 뒤 진료실에서 바로 운동이나 영양 처방을 해도 별도 비용을 받을 수 없다. 당뇨나 고혈압 치료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해서다.인터넷 등에 증상을 올린 환자에게 의사가 특정 질환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하거나 환자 상태에 따라 진단 처방 등이 필요한 서비스는 모두 병원에서 의료인이 해야 하는 서비스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만 검색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수준만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네거티브 방식의 가이드라인을 기대했지만 사업할 때마다 복지부에 유권해석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환자 특화 서비스는 불법
서울대병원과 헬스커넥트가 함께 개발한 당뇨병 환자 관리 앱 헬스온G의 정식 버전은 여전히 국내에선 사용할 수 없다. 이 앱은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 인슐린 수치를 알려주는 게 핵심이다.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고 해외 학회에서 환자 치료 성과가 좋다고 논문도 냈다. 중국과 중동에 수출까지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의료법에 막혀 기능을 모두 쓰지 못한다. 인슐린 투여량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뺀 라이트 버전만 내놨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앱을 통해 관리받는 서비스를 더 필요로 하는 환자는 인슐린을 투여하는 환자”라며 “식이조절과 운동법 안내만으로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해도 비용을 받기는 어렵다. 단순히 영양 관리를 해주고 운동법을 알려주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급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헬스케어 업계에선 시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병원 진료와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병원 진료와 연계한 서비스는 불법인 데다, 의료행위가 아닌 헬스케어 서비스만으로는 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의료 인공지능 개발해도 진료비 0원
의료 AI도 마찬가지다. 식약처에서 뷰노의 AI를 의료기기로 허가한 뒤 루닛, JLK인스펙션 등의 업체가 추가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중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은 없다.
국내 대학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AI 연구는 늘어나는 추세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부비동염 진단을 보조하는 AI를 개발했다. 서울대병원은 폐 엑스레이 사진을 분석해 폐암 진단을 보조하는 기기를 개발했다.미국 등 해외에서는 AI가 환자의 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분석해 응급도를 측정한 뒤 위급한 순서대로 판독 순서를 바꾸는 연구도 하고 있다. 구진모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의사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면 인력이 부족한 병원 등에서 AI를 1차 스크리닝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