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정부가 무제한으로 돈 풀어도 문제 없다"…日서 '이단'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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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미국과 일본에서 ‘현대 화폐 이론(MMT)’이라는 경제이론이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무제한으로 돈을 풀더라도 20세기 초 독일의 경우와 같은 초(超)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게 됐다며 정부가 재정적자 규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돈을 많이 풀면 물가가 뛰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전통 경제학 입장에선 ‘이단(異端)’과도 같은 주장입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정부의 빚 대부분을 자국민이 소화하는 일본 같은 나라에선 돈을 풀어도 부작용 없이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한 사람도 적지 않은 모습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시작된 ‘MMT’가 실증사례로 거론한 것이 일본인만큼, 일본 내에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한 주목도는 높아졌지만 정책 당사자인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MMT논쟁이 영 마뜩치 않은 표정입니다. ‘MMT’지지파의 주장이 재정건전화를 목표로 둔 일본 정부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어진 만큼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MMT’에 일본 정부와 BOJ가 경계를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올 3월 이후 기자회견과 의회 답변 등을 통해 ‘MMT’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구로다 총재는 “MMT는 재정적자와 채무 잔액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는 “MMT는 일본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며 “정부가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에 대해 시장에 확실한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도 의회 답변에서 “극단적인 논의에 빠져 재정 규율을 풀어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통화·재정정책 담당자들이 모두 ‘MMT’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이 이론이 재정건전화라는 정부 목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이유가 큽니다. 여기에 때마침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경기 대처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입니다. 2018년 현재 일본 정부 부채는 1100조엔(약 1경1897조원)에 달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2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하지만 ‘MMT’신봉자들은 지속적으로 일본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언급하며 대중의 관심을 계속 끌어들이는 모양새입니다. ‘MMT전도사’로 불리는 스테파니 켈튼 뉴욕주립대 교수는 올 3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MMT’의 유익한 실증 사례”라며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경고가 일본에서 실현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의 경제학 상식이 무너졌다”고 불을 붙였습니다. 일본 정부와 BOJ가 ‘MMT’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실증사례라는 것입니다.경제산업성 관료 출신 경제평론가인 나카노 다케시도 지난달 자민당 젊은 의원들의 공부모임(벤쿄카이)에서 “정부가 돈을 계속 풀어 정부부채가 5000조엔이 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2013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시행 이후 BOJ가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여 시중에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몇 년째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BOJ목표치인 2%에도 못 미치는 점을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실제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국가부채는 20%가량 늘었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8%상승하는데 그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계속해서 ‘MMT’에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계속해서 논의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치권에선 지속적으로 ‘MMT’에 관심을 표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는데 돈을 푸는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도 영향을 미친 듯한 모습입니다. 정통 경제학계에서 ‘재앙의 레시피’라고도 불리는 ‘MMT’가 그저 한순간 호사가들의 토론 주제에 그칠지, 아니면 계속 영향이 증폭돼 일본 정부와 BOJ가 입장을 바꾸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지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정부의 빚 대부분을 자국민이 소화하는 일본 같은 나라에선 돈을 풀어도 부작용 없이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한 사람도 적지 않은 모습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시작된 ‘MMT’가 실증사례로 거론한 것이 일본인만큼, 일본 내에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한 주목도는 높아졌지만 정책 당사자인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MMT논쟁이 영 마뜩치 않은 표정입니다. ‘MMT’지지파의 주장이 재정건전화를 목표로 둔 일본 정부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어진 만큼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MMT’에 일본 정부와 BOJ가 경계를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올 3월 이후 기자회견과 의회 답변 등을 통해 ‘MMT’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구로다 총재는 “MMT는 재정적자와 채무 잔액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는 “MMT는 일본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며 “정부가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에 대해 시장에 확실한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도 의회 답변에서 “극단적인 논의에 빠져 재정 규율을 풀어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통화·재정정책 담당자들이 모두 ‘MMT’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이 이론이 재정건전화라는 정부 목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이유가 큽니다. 여기에 때마침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경기 대처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입니다. 2018년 현재 일본 정부 부채는 1100조엔(약 1경1897조원)에 달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2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하지만 ‘MMT’신봉자들은 지속적으로 일본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언급하며 대중의 관심을 계속 끌어들이는 모양새입니다. ‘MMT전도사’로 불리는 스테파니 켈튼 뉴욕주립대 교수는 올 3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MMT’의 유익한 실증 사례”라며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경고가 일본에서 실현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의 경제학 상식이 무너졌다”고 불을 붙였습니다. 일본 정부와 BOJ가 ‘MMT’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실증사례라는 것입니다.경제산업성 관료 출신 경제평론가인 나카노 다케시도 지난달 자민당 젊은 의원들의 공부모임(벤쿄카이)에서 “정부가 돈을 계속 풀어 정부부채가 5000조엔이 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2013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시행 이후 BOJ가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여 시중에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몇 년째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BOJ목표치인 2%에도 못 미치는 점을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실제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국가부채는 20%가량 늘었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8%상승하는데 그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계속해서 ‘MMT’에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계속해서 논의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치권에선 지속적으로 ‘MMT’에 관심을 표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는데 돈을 푸는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도 영향을 미친 듯한 모습입니다. 정통 경제학계에서 ‘재앙의 레시피’라고도 불리는 ‘MMT’가 그저 한순간 호사가들의 토론 주제에 그칠지, 아니면 계속 영향이 증폭돼 일본 정부와 BOJ가 입장을 바꾸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지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