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검증없는 보도 자제를…삼바 수사에서 유죄라는 단정 확산"

조직적 증거인멸 증거 vs 정상적 경영활동 일환일 수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부회장 보고’ 파일 등을 삭제한 것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혐의에 관여한 정황 증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삭제된 기록의 구체적 내용 등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그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유죄를 단정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검찰 수사 등에 대비해 ‘부회장 통화 결과’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방안(부회장 보고)’ 등 제목의 폴더 내 파일 등 2100여개 파일을 삭제했다. 지난 20일 구속기소된 삼성바이오에피스 양모 상무 공소장에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검찰은 디지털포렌식 기술을 이용해 일부 이 부회장의 육성이 담긴 통화 파일을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원과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은 회사 현안 등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이 부회장이 삼성바이오 관련 이슈를 직접 관리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또한 그가 분식회계와 콜옵션 문제 등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의심한다. 삼성바이오가 부채로 계산되는 콜옵션을 고의적으로 늦게 공시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었다는 게 검찰 측 판단이다.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삼성그룹의 조직적 범행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그룹 부회장이 계열사 임원들과 통화해 업계 동향, 현안, 필요한 것 등을 물어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영활동’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CEO와의 통화나 대화 내용을 어떤 형태로든지 정리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통상적 자료라면 왜 검찰 수사 등을 앞두고 삭제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중요한 자료가 불필요하게 유출되거나 별건으로 꼬투리 잡힐 것을 우려해 삭제하는 경우도 많다”고 대답했다. ‘부회장 파일’의 존재와 삭제만으론 삼성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행의 단서가 잡혔다고 보기엔 과도하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던 삼성은 23일 이례적으로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면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추측성 보도가 다수 게재되면서 아직 진실규명의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 수사 대상이 이 부회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자칫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상고심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증거인멸 혐의로 삼성 관계자들의 신병을 속속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직원 등을 구속한 데 이어, 22일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과 삼성전자 부사장 2명에 대해서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해 증거인멸 뿐 아니라 사건의 본안인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집중 캐물을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팀장 소환은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이후에 이 부회장도 검찰에 소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