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에 징역 3년6개월 선고 "경험에 맞지 않는 말 해"

'시험문제 유출' 숙명여고 교사 오늘 1심 선고
업무방해 혐의 징역 3년 6개월 선고
'쌍둥이 딸 문제유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에 징역 3년6개월 실형 선고 (사진=연합뉴스)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의혹으로 기소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의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재판부는 "두 학기 이상 은밀하게 이뤄진 범행으로 인해 숙명여고의 업무가 방해된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며 "대학 입시에 직결되는 중요한 절차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받는 고등학교 내부의 성적처리에 대해 다른 학교들도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로써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고, 교육 현장에 종사하는 교사들의 사기도 떨어졌다"며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며 경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하는 모습도 보여 죄질에 비춰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고교 내부의 정기고사 성적의 입시 비중이 커졌음에도 그 처리 절차를 공정히 관리할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도 사건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또 "딸들이 이 사건으로 학생으로서 일상을 살 수 없게 돼 피고인이 가장 원치 않았을 결과가 발생했다"며 검찰의 구형량인 징역 7년보다는 낮은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혐의를 입증할 정황으로 ▲ 현 씨의 정기고사 답안에 대한 접근 가능성 ▲ 정기고사를 앞두고 현 씨가 보인 의심스러운 행적 ▲ 딸들의 의심스러운 성적 향상 ▲ 딸들의 의심스러운 행적 등 4가지를 들었다.

우선 현 씨가 정기고사 출제서류의 결재권자이고, 자신의 자리 바로 뒤 금고에 출제서류를 보관하는 데다 그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던 만큼 언제든 문제와 답안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재판부는 봤다.이런 상황에서 현 씨는 정기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주말 출근을 하거나 초과근무 기재를 하지 않은 채 일과 후에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서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금고를 열어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쌍둥이 딸의 성적이 같은 시점에 중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한 것을 두고도 재판부는 "진정한 실력인지 의심스럽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기고사 성적과 달리 모의고사나 학원 등급평가에서는 성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이어 "고교 3학년이 아니면 모의고사에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어 그런 성적 차이를 결정적인 부정행위 정황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문을 독해하는 국어나 평소 실력이 중요한 수학 등 과목에 한정해도 정기고사는 교내 최상위권인데 비해 모의고사 등의 성적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시험지 위에 깨알같이 작고 연한 글씨로 답안을 적어 두거나, 제대로 된 풀이 과정도 없이 고난도 문제의 정답을 적거나, 서술형 답안에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을 교사의 정답과 똑같이 적거나, 시험 직전 정답이 바뀐 문제에 두 딸이 똑같이 정정 전 정답을 적어 틀린 사실 등은 두 딸의 의심스러운 행적으로 꼽혔다.

현씨는 숙명여고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던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회에 걸쳐 교내 정기고사 답안을 같은 학교 학생인 쌍둥이 딸들에게 알려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숙명여고 쌍둥이 휴대전화서 발견된 유출 정황 [수서경찰서 제공]
앞서 열린 현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쌍둥이 언니 A양은 "아버지가 중간·기말시험 답안을 사전에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A양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 실력으로 인문계 1등을 했다"면서 "아버지가 같은 학교 교무부장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부모와 학생들의 시기 어린 모함을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A양은 1학년 1학기에 전체 석차가 100등 밖이었다가 2학기에 5등, 2학년 1학기에 인문계 1등으로 올라선 비결에 대해서는 "교사의 성향을 터득하고 맞춤형 방식으로 시험 범위의 교과서를 철저히 암기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동생 B양 역시 1학년 1학기 전체 50등 밖이다가 2학기에 2등, 2학년 1학기에 자연계 1등이 된 경위에 대해 "교과서와 선생님 말씀에 충실했다"고 답했다.

B양은 지난해 숙명여고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물리 과목 100점을 맞았는데, 해당 문제지에는 풀이과정이 거의 쓰여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52213 45142…’ 등으로 객관식 정답이 그대로 쓰여 있기도 했다. C양은 ‘문제를 다 푼 뒤 문항 번호의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해 써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씨는 자신의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아 파면이 확정됐고 쌍둥이 자매 또한 지난해 11월 최종 퇴학 처리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