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기째 '분배 참사'…내몰리는 취약계층

하위 20% 소득 2.5% 감소
최저임금 폭등 탓 일감 줄어
서울의 한 세무서에서 근로·자녀장려금 신청을 받고 있는 모습.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소득 하위 20% 가구의 올해 1분기 월평균 소득이 1년 전에 비해 2.5% 감소했다. 이들 가구 소득은 작년 1분기부터 5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국내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도 10년 만에 줄었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9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를 보면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명목소득은 월평균 125만5000원(2인 이상 가구)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줄었다.
1분위 소득은 2017년 4분기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지난해 1분기에 8.0%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2분기(-7.6%) 3분기(-7.0%) 4분기(-17.7%)까지 계속 줄었다.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2019년부터 나타날 것”이란 정부 설명과 달리 해가 바뀌어도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올해 1분기 국내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세금 연금 이자비용 등을 제외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월평균 374만8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5% 줄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3분기뿐이었다.'소주성 2년' 쪼그라든 가계살림…'소비에 쓸 돈' 10년 만에 줄었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가계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최저임금을 작년과 올해 총 29.1% 올리는 등 ‘소득주도성장 실험’을 한 결과 최하위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급감했다. 취약계층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근로소득이 ‘제로(0)’가 되면서 정부가 아무리 지원(공적이전소득)을 해도 이들의 소득 감소세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이 경제를 성장시키긴커녕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근로소득 급감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9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를 보면 1분위(소득 하위 20%)의 근로소득은 월평균 40만44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5% 감소했다. 정부 수당이나 연금 등을 포함한 이전소득은 5.6% 늘어난 63만1000원이었지만 근로소득 감소폭이 더 커 전체 소득은 1년 전에 비해 2.5% 줄었다. 1분위 소득은 작년 1분기부터 다섯 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5분위(소득 상위 20%) 가계의 소득도 월평균 992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5분위 소득이 줄어든 것은 2015년 4분기(-1.1%) 후 처음이다. 5분위 근로소득도 3.1%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2017년 노사합의 지연으로 상여금을 2018년 1분기에 받은 5분위 가구가 많았다”며 “이 때문에 작년 1분기에 비해 올 1분기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했다. 2분위(소득 하위 20~40%) 소득은 4.4%, 3분위(소득 상위 40~60%)는 5.0%, 4분위(소득 상위 20~40%)는 4.4% 늘었다.

지난 1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세금 연금 이자비용 등을 제외한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월평균 374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9년 3분기(-0.7%) 후 10년 만이다. 처분가능소득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첫 단계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하는 건 금융위기처럼 외부 충격이 있을 때나 나타나는 모습”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은 근로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건강보험료가 인상되고 이자비용이 확대된 게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건강보험료는 지난해 2.04% 오른 데 이어 올해도 3.49% 인상됐다. 올해 1분기 전체 가구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지출은 1년 전에 비해 8.6% 늘었다. 전체 가구가 부담하는 이자비용도 같은 기간 17.5%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기준금리를 올린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건 정부가 거둬가는 돈이 많아졌다는 뜻”이라며 “소득을 늘려 성장한다는 게 소득주도성장 논리인데 그렇다면 차라리 세금을 감면해주는 쪽이 낫다”고 말했다.

분배도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

소득 감소로 분배지표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80배로 작년 4분기 5.47배보다 커졌다. 5분위 배율은 5분위 평균소득을 1분위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가구별 가구원 수를 고려(균등화)해 계산한다.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고 해석한다.

1분기 5분위 배율만 놓고 보면 작년 1분기 5.95배에 이어 2년 연속 6배에 근접했다. 5분위 배율이 5.80배 이상을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5.81배) 2009년(5.93배) 2010년(5.82배)뿐이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5.80배 이상으로 올라갔다.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등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5분위 배율이 9.90배지만 정부의 공적이전소득에 따른 정책효과가 반영된 5분위 배율은 5.80배”라며 “정부 정책효과가 사상 최대”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동원해 저소득층에 각종 수당 등을 지급함으로써 분배지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다.

이태훈/서민준/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