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인인증서 18년 독점 해프닝…결국 경쟁이 옳았다

공인인증서 절차가 불편하다는 지적이 쏟아져도 좀체 움직이지 않던 은행들이 잇달아 ‘탈(脫)공인인증서’ 선언을 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고객 이용 편의성을 강조하며 사설인증서를 통한 간편이체에 성공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결국 경쟁이 2002년부터 18년째 보안 인증방식을 사실상 독점해온 공인인증서 체계에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공인인증서는 정부가 공인한 일종의 전자 인감도장이다. 정부가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은행들은 사고가 터져도 책임져야 할 부담이 작다고 생각했다. 소비자 불편에도 은행 스스로 보안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공인인증서를 쓰기 위해 액티브X 등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또 다른 문제도 발생했다. 특정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해킹의 상시 표적이 된 것이다.2015년 정부가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한 후에도 여전히 변화에 소극적이던 은행들을 움직이게 만든 건 인터넷은행의 출현이었다. 인터넷은행이 보안에 책임을 지면서 고객에게 최소한의 인증만 요구하는 ‘사용자 친화적’ 방식으로 시장을 파고들자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쟁이 변화를 몰고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정부가 처음부터 인증 경쟁을 유도했다면 혁신이 더 빨리 일어났을지 모른다.

탈공인인증서 바람은 이제 시작이다. 은행 대출은 여전히 공인인증서 없이는 이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공인인증서를 거치지 않는 온전한 은행 거래로 가려면 국회에 계류 중인 전자서명 제도를 민간 위주로 개편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과 신용정보법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 정부가 기술 중립성을 견지하면서 민간 경쟁에 맡겨야 할 건 공인인증서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