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박병원을 경제부총리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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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없는 경직된 집단사고로 외면다들 궁금해하면서 납득 못 하는 게 있다. 왜 문재인 정부는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대해 그 어떤 충고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을까.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가계 실질소득이 줄고, 성장률은 뒷걸음이고, 실업은 지난 20년 새 최고인 현실을 보면 더 그렇다. 국내외 석학들은 물론 국책연구기관(KDI), 국제기구(IMF, OECD)까지 한목소리로 이대론 안 된다는데도 꿈쩍도 않는다.
'촛불지분'이 정책 유연화 원천봉쇄
화전민식 경제운용, 위기돌파 못해
오형규 논설위원
경제난은 어떤 정권이든 치명적이다. 민심이 이반하고 야당에 공격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쉽지 않음을 여당 의원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만 잠시 보류했을 뿐, 달라진 게 없다.경제팀이 있다지만 관료 출신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은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관료 불신이 ‘패싱’으로 이어진 지 오래다. 내각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여당 출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참여연대 출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정도다. 대신 “정책방향에 대해선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김수현 정책실장, “고용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정태호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86그룹 실세들만 일사불란하다.
청와대도 눈과 귀가 있을 텐데, 민초들의 팍팍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오불관언인 것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방어심리 탓으로 흔히 추측한다. 경제도 정치적 표 계산 관점에서 본다는 얘기다. 애써 유리한 경제지표만 내세우며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이유다.
하지만 이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금융계 인사 A씨는 “대선 직전 한 경제연구소장이 ‘경제는 우파에게 맡기라’고 조언했다가 문재인 후보의 얼굴이 굳어져 당황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시장과 기업 활력을 도모하는 우파정책에 본능적 알레르기가 있는 듯하다.86그룹 실세들을 겪어본 전직 관료 B씨의 설명을 들으면 좀 더 분명해진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해서 실패했다’고 여겨, 더 철저히 좌회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촛불혁명 정부’이기에 주도세력들마다 지분이 있다. 각 세력이 정책을 맘대로는 못 해도 비토권은 갖고 있다.”
사실 대선공약과 100대 국정과제를 보면 대개 ‘임자’가 있다. 버스, IT업계 등 비명소리 난무하는 획일적 주 52시간 근로제, 현실과 동떨어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정책 유연성이 원천봉쇄돼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10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실용주의가 아쉬워진다. 당시 청와대에서 마흔 안팎이던 86그룹은 서열상 관료 위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50대이고 지위도 높아져 당·정·청의 핵심이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기를 즐긴 노 전 대통령과 달리, 토론 없이 확증편향에 갇힌 집단사고만 엿보인다. 촛불세력은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딴지를 걸 수 있다. 의사결정 구조상 아무리 밖에서 정책 전환을 충고해봐야 듣지도, 들을 수도 없다는 얘기다.운 나쁜 노무현 정부는 카드사태, SK글로벌 부실,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와 함께 출발했지만, 운 좋은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 활황, 세계경제 회복, 세수 호황을 등에 업고 시작했다. 그런데도 2년 만에 총체적 무기력 상태로 치닫고 있다. 현실감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여당 중진은 “노무현 정부가 이헌재를 썼듯이, 경제부총리로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을 기용해야 한다”면서도 스스로 현실성을 낮게 봤다.
대외환경마저 먹구름이 짙어져 올해 2%대 성장조차 버거워지고 있다. 그간 경제 운전솜씨에 비춰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지 다들 불안해한다. ‘내일은 없다’는 화전민식 경제운용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다. 이젠 시간도 없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