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비무장지대 둘레길 가보니] 66년 전 '핏빛' 백마고지는 서정(敍情)으로 가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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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으로 뒤덮인 백마고지는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약 2만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땅에도 꽃은 피고, 나무가 자랐다. 그렇게 ‘철의 삼각지대’는 ‘비무장지대’란 이름을 안고 66년 치유의 세월을 견뎠다. 자연은 그 보답으로 이 땅에 생명을 선물했다. 겨울이면 두루미(鶴) 수천마리가 찾아오고, 높디 높은 산봉우리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역곡천은 희귀 어류들의 서식지로 변모했다. 지난 23일 철원군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화살머리고지까지 이어진 ‘DMZ 평화의 길’을 다녀왔다.‘DMZ 평화의 길’은 그 어떤 트래킹 코스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속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무려 66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이다. 사막 같은 황무지가 아니라 생거지(生居地)가 이처럼 오랜 시간 인공(人工)에 물들지 않은 사례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이 낳은 역설이다.길은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시작된다. 화살머리고지에 있는 GP초소까지 약 1시간 반을 걷는 코스다. 돌아올 땐 미리 준비된 승합차를 타면 된다.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한국군과 유엔 연합군은 무려 아홉번에 걸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옛부터 마산(馬山)으로 불렸던 산봉우리에 무려 27만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존재하는 생명은 모두 불길에 사라졌다. 화염과 폭음을 견디지 못하고 마산은 허연 창자를 토해냈다. 그래서 백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의 폭력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지금도 백마고지 중간중간엔 풀 한포기조차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남아 있다.
백마·공작·화살머리 등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지질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추가령구조곡 혹은 추가령지구대로 불리는데 이곳을 경계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구분된다. 먼 옛날 홍적세에 땅 밑에 꿈틀거리던 용암이 분출하면서 땅은 옥토로 바뀌었다. 수량도 풍부하다. 비무장지대 이북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나가는 역곡천은 한탄강의 원류다. 한국전쟁 이전만해도 북측 철원땅의 봉래호가 넓디넓은 철원평야를 흠뻑 적셨다. 중공군은 이 봉래호의 둑을 무너뜨림으로써 백마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패전으로 물러난 뒤에도 김일성은 고약한 심사를 어쩌지 못하고, 봉래호를 막았다.백마고지 전적비에서 묵념한 뒤, 58통문으로 들어서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트래킹의 시작이다. 허가없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58’은 육군 제5사단이 관할하는 여덟번째 통문이라는 의미다. 58통문 조망대에 서면 백마고지를 비롯해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각 고지 위엔 500m의 간격을 두고 GP가 설치돼 있다. 얼핏 보면, 유럽의 성채 같다. 비무장지대란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북과 남쪽으로 2㎞씩을 비워 놓은 공간이다. 유엔사령부가 관할한다. 이론상으로는 2㎞지만, 지도 위의 숫자일 뿐 실제로는 지형을 감안해 남방한계선이 그어졌다. 이곳 ‘DMZ 평화의 길’은 그 중에서도 좀 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는 곳이다. 화살머리고지 GP에서 북측 초소까지의 거리는 짧은 곳은 1.9㎞, 길어봐야 2.2㎞다.민정경찰로 불리는 군인이 주둔하는 GP를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트래킹의 묘미다. 한 시간 반을 서정 가득한 자연을 벗삼아 걷다보면, 화살머리고지 GP에 다다른다. 2003년까지는 군인들이 먹고 자던 거주 GP였으나 지금은 비거주 GP로 쓰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GP를 지키는 군인들의 대형 사진을 볼 수 있다. 어느 사진작가가 재능기부로 찍어준 것이란다. 늠름한 군인들의 면면을 보면서 복도를 지나면 벙커로 쓰이던 공간에 작은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전사자들의 유품이다. 쉬지 못하고 총알을 토해내다 총신이 휘어져버린 기관총, 30여 발의 총탄을 온몸으로 받아낸 수통, 미처 쏘지 못한 총알을 남긴 채 묻혀 버린 총신(銃身)….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일으킨다.
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인 약 2시간의 비무장지대 산책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6월1일부터 하루 80명에 한해 개방될 이 길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 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었다. 북한은 이달에만 두 번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어렵게 찾아온 이곳의 평화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역곡천은 남북을 넘나들고, 두루미는 호국영령들의 영혼을 안고 자유로이 날고 있건만….
박동휘 정치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백마·공작·화살머리 등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지질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추가령구조곡 혹은 추가령지구대로 불리는데 이곳을 경계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구분된다. 먼 옛날 홍적세에 땅 밑에 꿈틀거리던 용암이 분출하면서 땅은 옥토로 바뀌었다. 수량도 풍부하다. 비무장지대 이북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나가는 역곡천은 한탄강의 원류다. 한국전쟁 이전만해도 북측 철원땅의 봉래호가 넓디넓은 철원평야를 흠뻑 적셨다. 중공군은 이 봉래호의 둑을 무너뜨림으로써 백마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패전으로 물러난 뒤에도 김일성은 고약한 심사를 어쩌지 못하고, 봉래호를 막았다.백마고지 전적비에서 묵념한 뒤, 58통문으로 들어서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트래킹의 시작이다. 허가없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58’은 육군 제5사단이 관할하는 여덟번째 통문이라는 의미다. 58통문 조망대에 서면 백마고지를 비롯해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각 고지 위엔 500m의 간격을 두고 GP가 설치돼 있다. 얼핏 보면, 유럽의 성채 같다. 비무장지대란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북과 남쪽으로 2㎞씩을 비워 놓은 공간이다. 유엔사령부가 관할한다. 이론상으로는 2㎞지만, 지도 위의 숫자일 뿐 실제로는 지형을 감안해 남방한계선이 그어졌다. 이곳 ‘DMZ 평화의 길’은 그 중에서도 좀 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는 곳이다. 화살머리고지 GP에서 북측 초소까지의 거리는 짧은 곳은 1.9㎞, 길어봐야 2.2㎞다.민정경찰로 불리는 군인이 주둔하는 GP를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트래킹의 묘미다. 한 시간 반을 서정 가득한 자연을 벗삼아 걷다보면, 화살머리고지 GP에 다다른다. 2003년까지는 군인들이 먹고 자던 거주 GP였으나 지금은 비거주 GP로 쓰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GP를 지키는 군인들의 대형 사진을 볼 수 있다. 어느 사진작가가 재능기부로 찍어준 것이란다. 늠름한 군인들의 면면을 보면서 복도를 지나면 벙커로 쓰이던 공간에 작은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전사자들의 유품이다. 쉬지 못하고 총알을 토해내다 총신이 휘어져버린 기관총, 30여 발의 총탄을 온몸으로 받아낸 수통, 미처 쏘지 못한 총알을 남긴 채 묻혀 버린 총신(銃身)….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일으킨다.
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인 약 2시간의 비무장지대 산책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6월1일부터 하루 80명에 한해 개방될 이 길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 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었다. 북한은 이달에만 두 번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어렵게 찾아온 이곳의 평화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역곡천은 남북을 넘나들고, 두루미는 호국영령들의 영혼을 안고 자유로이 날고 있건만….
박동휘 정치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