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 여유있다? 공기업 포함하면 채무비율 60%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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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비율 40% 논란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데 국제기구는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적정 나랏빚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중앙·지방정부 채무(D1) 기준 39.5%이고 내년 40%를 넘어 2022년 41.6%까지 커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말은 ‘국가채무 방어선’을 뒤로 물리는 한이 있어도 정부 곳간을 더 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21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국은 재정을 확대할 여력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충분하다”고 지원 사격했다.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은…
KDI 전망대로면 올해 40% 넘어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한국의 ‘특수 요인’을 고려하면 나랏빚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미국, 일본 등처럼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국가부채비율이 이미 60%를 웃돈다는 얘기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복지수요 증대, 경제성장률 둔화 등 리스크를 감안하면 겉으로 보이는 지표만으로 안심할 상황이 아니란 목소리도 높다.공기업 부채 포함 국가채무비율은 60.4%
문 대통령이 국가채무비율 국제 기준으로 인용한 것은 유럽연합(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으로 알려졌다. 협약은 일반정부 부채(D2, D1+비영리공공기관) 기준 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대로면 한국은 2017년 기준 42.5%로 10%포인트 이상 여유가 있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를 고려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비금융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한국의 국가채무비율(D3)은 2017년 60.4%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4대강 사업 등 정부가 공기업 부채를 동원해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공공부채가 유난히 많다”고 말했다. 실제 D3 가운데 공기업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4.0%로 일본(6.7%), 영국(1.5%)보다 월등히 높다. 김 교수는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정 D3 비율은 약 64%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세금 수입, 물가, 제도 및 금융시스템 발달 정도 등을 고려해 분석한 결과다. 이 분석대로면 채무비율을 늘릴 여유가 약 4%포인트밖에 안된다.한국을 달러, 유로화 등 기축통화를 쓰는 나라들과 비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축통화국은 비상시 돈을 찍어 재정을 확충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로화를 안 쓰는 유럽 국가인 헝가리는 채무비율 기준을 50%로 정했다. 스위스(41.2%), 호주(43.6%), 뉴질랜드(36.0%) 등 다른 비기축통화국은 한국과 비슷한 채무비율에서 관리되고 있다.
성장률 떨어져 올 채무비율 40% 넘길 수도
경제성장률 둔화, 빠른 고령화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일로에 있어 정부가 재정 확대 정책을 펴지 않아도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나빠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재부는 올해 D1 기준 국가채무비율을 39.5%로 보고 있다. 여기엔 경상GDP가 3.9% 증가한다는 전제가 있다.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경상GDP 증가율이 2%대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을 내놨다. KDI 전망대로면 국가채무비율은 당장 올해 40%를 돌파한다. 세금 수입 감소도 우려된다. 지난해 정부가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렸음에도 국가채무비율이 제자리걸음한 것은 세수가 전년보다 8.1% 증가한 덕이 컸는데, 올해는 3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0.2% 쪼그라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복지 사업과 같은 ‘의무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의무지출은 재정 지출 근거와 요건이 법에 구체적으로 규정돼 감축하기 어려운 예산이다. 의무지출은 2015년 전체 지출 중 46.4%였으나 작년 50.7%까지 올랐다.
“나랏빚 관리 기준 법제화해야”전문가들은 한국의 특수 요인을 고려해 적정 나랏빚 기준을 마련하되 이를 법제화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국가채무비율 60% 이내 관리’ 등 채무 준칙을 법률에 명시한 나라는 23개국에 이른다. 스페인과 독일, 헝가리 등은 아예 헌법에 못 박았다. 한국은 2016년 ‘국가채무비율 45% 이내 관리’ 등 내용을 담은 재정건전화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다.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 기재부 방침은 암묵적 기준에 불과하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인기 영합적인 재정 지출 확대를 제어하려면 재정건전화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