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길에서 찾은 빠름과 느림의 조화

이강래 < 한국도로공사 사장 leekr21@ex.co.kr >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5000년 역사 동안 이민족의 크고 작은 침략을 겪으며 빠른 상황 파악과 결단력이 체질화된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 때문일까. 혹은 1960~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빨리빨리’ 문화가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빨리빨리’ 기질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다. 정보기술(IT)산업을 비롯한 조선, 건설, 자동차, 철강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속도에서 다른 나라들을 앞섰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기질에는 빠름만 있는 게 아니다. 기다림과 여유로움,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느림의 미학’도 공존한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도자기를 만드는 등 대부분의 상황에서 여유로웠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비를 맞아도 뛰지 않고 느릿느릿 걸었을 정도였으니 느림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기질이다. 우리 민족의 느림은 게으름과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느림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다. 급한 사람은 세상과 자연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오직 ‘나’만 있을 뿐이다.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고속도로는 행락 차량들로 붐빈다. 빠름을 추구하는 이곳에도 느림의 미학은 존재한다. 휴게소가 바로 그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옛날 주막과 비슷하다. 발길 바쁜 나그네들은 주막에서 경치를 구경하거나 국밥 한 그릇에 지친 몸을 달랬고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놨다. 때로는 물건을 거래하기도 하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오늘날 휴게소는 주막의 역할을 한다. ‘빨리빨리’ 목적지를 향해 가던 운전자들에게 휴식의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휴게소, 지역 특색을 접목한 테마 휴게소는 힐링의 공간이 된다. 지역특산물로 만든 다양한 휴게소 먹거리가 나들이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고급 원두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휴게소 전용 카페도 등장했다.

빠름은 기계의 시간이고, 느림은 자연의 시간이란 말이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루 매슈스는 “행복은 현재에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의 삶은 치열한 쫓고 쫓김의 연속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길, 빠름에서 잠시 벗어나 휴게소에서 느림의 여유로움과 행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