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미네르바와 팩맨, 디지털 권력이동 아이콘

누구나 킬러 콘텐츠 생산 가능한 시대
舊질서 지키려는 정부규제는 시대착오
디지털 변화 흐름 타야 미래 열 수 있어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미네르바’라는 필명이 2008년 하반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게재한 경제 분석에서 예견했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등이 적중해 명성을 얻었다. 주요 언론에서 앞다퉈 언급하면서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로부터 “미네르바는 현재 가장 뛰어난 우리의 경제 스승”이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정체를 둘러싸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면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이듬해 전문대학을 졸업한 30대 무직자로 밝혀지면서 세간의 소위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당혹시켰다. 작성한 글들은 인터넷에서 짜깁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허탈한 결말의 에피소드지만 디지털 시대 지식 확산과 미디어 융합으로 촉발되는 권력이동을 함축하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라도 최신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신문, 잡지, 방송 등 전통미디어가 아닌 포털 토론방에 게재된 평범한 일반인의 의견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유통되면서 기존 미디어와 전문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최근에도 10년 전 미네르바와 대비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1인 유튜버로 시사이슈를 주로 다루는 ‘팩맨’의 국회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한 논평을 국내 최대 방송사인 KBS가 뉴스 시간에 가짜뉴스로 보도해 논란이 됐다.

각각의 입장에 대한 사실관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현상은 그 자체로 디지털 시대 권력 이동을 웅변한다. 미네르바가 포털 기반의 텍스트이고, 팩맨은 유튜브 기반의 동영상이라는 형식적 차이 외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대표주자인 거대 공중파 방송사가 1인 유튜버의 콘텐츠를 정규 프로그램에서 반박하는 구도 자체가 디지털 혁신으로 진행된 지식 확산과 미디어 융합을 나타낸다. 실제로 최근 시사분석은 물론 마케팅, 취미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유튜버들이 기존 아날로그 미디어의 영향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1990년 출간한 《권력이동》에서 정보화 진전에 따른 미디어의 융합과 권력 이동을 예견했다. “앞으로 TV와 컴퓨터 기술이 결합하면 권력이 낡은 TV방송망에서 이용자에게로 옮겨가 시청자들이 마음대로 영상을 개조하게 될 것이다.” 당시 미국은 콘텐츠 유통의 중심이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이전되는 과정이었고 명망 있는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조지 길더는 TV와 컴퓨터가 융합된 ‘텔레컴퓨터(telecomputer)’의 도래를 예견했다. 21세기 현대인의 일상용품인 스마트폰에 30년 전 예측했던 텔레컴퓨터의 ‘상호작용성-이동성-전환성-접속성-확산성-범세계성’이 응축돼 있다.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의 쌍방향 상호작용, 이동 중 사용가능, 텍스트-음성-영상 간 전환과 융합, 디바이스 간 자유로운 상호접속, 모든 계층 보급, 글로벌 차원 유통구조라는 여섯 가지 원리가 결합하면서 범세계적 차원에서 혁명적인 신경계통을 형성하고 사회경제적 권력이동이 가속화되리라는 예측은 오늘날 현실이 됐다.아날로그 미디어인 신문, 라디오, 공중파TV 시대에는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일반인은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으로 개인이 스마트폰 등으로 손쉽게 생산한 콘텐츠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 등의 플랫폼을 경유해 전 세계에 유통시킬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부각되는 인기 유튜버들은 디지털 혁신으로 촉발되는 개인으로의 권력이동의 아이콘이다.

아날로그 구질서의 수호자로 비치는 정부의 퇴행적 규제와 기존 미디어의 신경질적 폄하는 시대착오와 다름없다. 오히려 디지털 변화의 흐름에 전향적으로 편승해야 조직과 개인의 미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