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차 산업혁명, 특허심사부터 혁신해야

"4차 산업혁명 키워드는 융복합
글로벌 가치사슬 주역 되려면
산업계와 소통, 특허심사 바꿔야"

권오경 <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융복합화를 통해 큰 폭의 산업구조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신산업과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창출하며 전 세계적인 규모로 산업계 지각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

기존 제조업체들의 변신 노력도 치열하다. 타이어에 센서를 장착해 교환시기 등을 조언하는 사업모델을 내놓고 ‘디지털 서비스 업체’를 선언한 타이어제조사 미쉐린, 엔진 결함 및 교체시기를 알려주는 ‘토털 케어’ 서비스를 통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는 엔진제조사 롤스로이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서비스와의 접목을 연구하지 않는 제조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최종제품의 단순한 공급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국내 기업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융복합기술의 특허출원은 연평균 8.4%씩 늘고 있다. 또 유럽특허청(EPO)은 지난 6년간(2011~2016) 4차 산업혁명 분야 특허출원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기업들이 융복합기술 관련 특허출원, 특히 해외출원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업들이 융복합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혁신을 추진하려면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뿐 아니라 고품질의 특허심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허심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발명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고, 사업 진행 중에 특허가 무효로 되지 않으며, 외국에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융복합기술은 특허심사의 일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사관 1인의 현행 단독심사 방식이 아니라 관련 기술 전문가들의 협의에 기반한 협업심사로 가야 한다. 3차원(3D) 인식 센서가 부착된 카메라에 AI를 결합해 누가 유리잔을 깨뜨렸는지 물으면, 해당 영상을 스스로 찾아 재생시켜 주는 해외 스타트업 제품이 있다. 이런 기술을 특허 심사하려면 센서, 카메라, AI 분야의 기술 전문가가 모여 상호간의 기술을 이해하고, 특허를 부여할지 합의하기 위한 협의 절차가 필수적이다. 자동차 기술에 센서와 네트워크 기술이 접목된 자율주행 기술, 신약 후보물질 선별에 AI를 활용하는 바이오헬스 기술, 신호 등에 IoT를 접목하는 교통개선 기술 등 융복합기술은 실생활 거의 대부분에 적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심사조직이 아니라 협력심사에 특화된 전담 조직으로, 심사관들을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매트릭스형 조직으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새롭게 창출되는 산업을 보호하고 지식재산권 이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특허청과 산업계의 소통도 중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계 상황을 수시로 특허 심사기준에 반영해 기술 발전에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특허 부여의 잣대인 심사기준은 특허청 심사관의 눈높이가 아닌, 산업계의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특허청은 전 세계 4억 건의 특허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산업을 분석해 유망기술 등 미래산업 경쟁력 확보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어떤 전략도 산업계와의 소통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최초로 근대 특허행정 체계를 만들고 특허법을 제정한 영국은 1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전기와 정보기술(IT)분야 기술혁신을 세계 최초로 특허 보호한 미국은 2~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세계 시가총액 1~5위를 차지한 혁신 기업을 독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우리가 선제적인 특허심사 혁신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주역으로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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