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의 전자수첩] 고래싸움에 새우등 '커진다'…미중 분쟁 반가운 삼성·LG

美 제재로 화웨이폰 제동…中 아이폰 불매 역공
아이폰, 中 침체…삼성, 프리미엄 수요 흡수
아시아·유럽·남미서 화웨이 대체 브랜드 역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 여파가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로 번졌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 스마트폰에 제동이 걸리면서 중국도 아이폰 불매로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애플과 화웨이의 빈 틈을 공략하며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게 됐다.

미국 상무부는 15일(현지시간) 화웨이 및 70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로 구글은 화웨이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당분간 제공하지 않기로 했고 인텔, 퀄컴, 자이링스, 브도드컴, ST마이크로 등 주요 칩 제조사들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또 영국, 일본, 대만 등 미국 동맹국들은 화웨이의 첫 5G 스마트폰 '메이트20X'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OS) ‘홍멍’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엔 어렵다. 설령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안드로이드를 완전히 대체할만큼 새 OS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아서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미래도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이 올해와 내년 각각 24%, 23%씩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2억580만대에서 올해 1억5600만대, 내년 1억1960만대로 급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연말까지 미국의 제재가 지속될 시 중국 이외 시장에서 신규 기기의 출하 제한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미국의 제재는 화웨이 스마트폰 시세에 즉시 영향을 줬다. 싱가포르에서 화웨이의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 'P30 프로'는 1398싱가포르 달러(약 121만원)에 판매되지만, 현재 중고가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100싱가포르 달러(약 9만원)까지 꼬꾸라졌다. 이는 브랜드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1분기 '갤럭시S10' 시리즈 덕에 중국 판매량을 전 분기보다 40% 끌어올렸다. 여세를 몰아 중국 내 아이폰 점유율을 일부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당하고만 있진 않다. 최근 중국에서는 화웨이 제재에 대한 보복성 성격을 띈 '아이폰 불매' 움직임이 감지됐다. 환구시보의 후시진 총편집인이 웨이보에 9년 간 사용했던 아이폰 대신 화웨이 휴대폰을 구매한 사실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중국 네티즌도 웨이보 등에 ‘아이폰 불매’를 외치는 글을 무더기로 올리면서 반애플 정서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미 아이폰은 중국에서 미중 갈등에 따른 침체를 겪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9.1%로 5위였는데, 올해 1분기 7%대까지 떨어졌다. 한때 점유율 20%를 넘어 1위를 차지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이 지난해 7월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촉발됐다. 현재 양국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향후 중국 내 아이폰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 자명하다.

아이폰이 몰락하는 중국 시장은 삼성전자에게 기회다. 반애플 정서가 고조되면서 삼성전자가 아이폰의 프리미엄 수요를 흡수할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긍정적 요소다. 삼성전자는 1분기 '갤럭시S10' 시리즈 덕에 중국 판매량을 전 분기보다 40% 끌어올렸다. 여세를 몰아 중국 내 아이폰 점유율을 일부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아시아와 유럽, 남미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화웨이의 빈틈을 노린다. 안드로이드 운영체계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화웨이를 대신할 브랜드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중저가 스마트폰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은 물론, 5G와 폴더블폰에서도 조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전망이다. LG전자는 상대적으로 출하량이 적어 반사이익이 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 막 개화한 5G폰 시장에선 확실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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