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크레스피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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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석 < 자유한국당 의원 esong63@naver.com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치르는 중간고사는 부모에게도 큰 관심사다. 성적이 높아지길 원하는 부모들에게 돈인들 아까우랴. 예를 들어 성적이 올랐을 때 1만원짜리 선물을 주기로 약속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치자. 다음 기말고사 때는 어떤 약속을 해야 할까? 2만원 선물을 약속해야 하나? 그러면 2학기는? 고3까지 모두 여섯 번의 시험이 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는 쥐들의 미로찾기 실험을 통해 ‘당근과 채찍 전략’의 효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현재 당근과 채찍을 얼마만큼 주느냐가 아니라, 이전에 비해 얼마나 더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근과 채찍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강도가 세져야 한다. 이렇게 발견한 일종의 법칙을 ‘크레스피 효과’라 부른다.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해 구성요건에 대한 법조문 적용이나 해석, 혹은 양형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고 한다. 관행적 행위라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바람직한 제도를 정착하려는 노력은 사회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일각에선 엄격한 법 잣대의 적용이 정책과 제도의 개선을 위한 미래지향적 판단이기보다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방편 아니냐며 수군대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크레스피 효과를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 예측되는 부분도 있다. 검찰 수사를 일종의 행동조절 방안으로 본다면 그 강도가 점차 커질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해제해 검찰에 이관하자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을 앞세운 검찰의 압수수색 등 기업에 대한 강력한 수사권 확보는 크레스피의 예견에 비춰볼 때 그 자체만으로 기업 경영활동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러 사법적 활동 영역의 파급력을 고려해볼 때 작은 부분에서 더 많은 부분으로 국가 개입이 진행된다면 열악한 경제여건 속에서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정책을 일부 국민은 반겨 맞을지 모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는 하나, 급하게 먹다가 체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 재정으로만 감당하는 복지 정책들이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해 결국 나라살림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빈 곳간을 다시 채우기 위해 후대가 적잖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진리도 마찬가지다. ‘크레스피 효과’라는 용어는 낯설어도 그 위험성은 본능적으로 알지 않을까.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발견된 원리는 우리 의식에 강하게 남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