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노조'에 막힌 조선산업 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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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무산 위기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노동계의 ‘기득권 지키기’에 막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조선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빅딜’이 노조의 불법 파업 및 폭력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두 회사 노동조합은 물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노조까지 동반 파업에 나설 태세다. 조선 ‘빅2’ 체제 구축에 실패할 경우 한국 조선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동계 '기득권 지키기' 총공세
민노총·현대車 노조까지 가세
현대중공업 노조는 29일 회사 물적 분할 임시주주총회가 열릴 울산 전하동 한마음회관을 사흘째 점거했다. 소속 조합원이 20만 명에 달하는 금속노조는 ‘전 사업장 총파업’을 내걸었다. 금속노조는 이날 산하 노조에 “진행 중인 교섭을 중단하고 현대중공업 주총 저지 투쟁에 결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현대차 노조도 “(현대중공업 노조의) 주총장 점거 농성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전 조합원 총파업과 연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현대중공업은 31일 주총을 열어 회사를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나눌 계획이다. 이후 한국조선해양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을 인수한다.
전문가들은 조선업 재편의 첫 단추인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 주총이 노조의 ‘생떼’에 좌절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값싼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과 선제 구조조정을 한 일본이 한국 조선업을 맹렬하게 추격 중”이라며 “조선 빅2 체제 구축이 실패하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769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중 344만CGT(점유율 45%)를 수주했다. 한국은 202만CGT(26%)로 2위로 밀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불법 파업으로 사업 재편이 지장을 받으면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쇠퇴의 길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현대重 물적 분할 4대 쟁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국 조선업을 ‘빅2체제’(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로 재편하려는 현대중공업의 계획이 암초를 만났다. 첫 단추인 물적 분할(법인분할)과 중간지주회사 설립부터 꼬여가고 있다. 회사 분할에 반대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27일부터 사흘째 임시주주총회장(울산 한마음회관)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 등을 둘러싼 쟁점을 따져봤다.
① 물적 분할에 문제 없나일반적인 기업 인수라면 현대중공업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55.7%·2조원어치)을 사들이면 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뤄지는 ‘빅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조선업의 과당경쟁을 막고 세계 1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수작업인 만큼 산은은 지분을 팔고 나가는 방식 대신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사)에 지분을 출자하는 물적 분할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적자(영업손실 5225억원)를 낸 현대중공업의 사정을 감안해 인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산은은 물적 분할 이후 현대중공업지주(약 28.5%)에 이어 한국조선해양의 2대 주주(약 18%)가 된다. 한국조선해양은 산하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4개 조선소를 거느리게 된다.
노조가 주장하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정 부사장은 정 이사장(25.8%)에 이은 현대중공업지주 3대 주주(5.1%)다. 한국조선해양 지분을 확보할 필요성이 없다.② 현대중공업만 손해 보나
노조는 물적 분할 이후 신설법인인 현대중공업이 ‘빈 껍데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분할계획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이 회사의 부채 7조2215억원 중 97.7%인 7조576억원이 신설 현대중공업에 승계된다. 구체적으로 △선박 금융 차입금(2조2000억원) △자재구입비 등 외상 매입금(1조5000억원) △선주에게 미리 받은 선수금(1조8000억원) △하자 대비 충당금(1조3000억원) 등이다.
회사 측은 조선소 도크(선체 제작 시설) 등 주요 자산을 신설법인이 가져가기 때문에 선박 건조와 관련한 부채 대부분을 현대중공업이 승계하는 게 맞다고 반박한다. 현행 상법과 세법에 따라 부채 승계 비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3조1000억원 규모의 선수금과 충당금은 장부상의 부채일 뿐 사실상 빚으로 볼 수 없다” 며 “나머지 부채도 현대중공업과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함께 책임지고 상환하게 된다”고 말했다.
③ 서울에 지주사 두면 울산 경제에 타격?
한국조선해양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4개 조선소를 관리한다. 연구개발(R&D)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다. 노조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한국조선해양 본사를 서울에 두는 것은 47년째 울산 경제를 지탱한 현대중공업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회사 측은 우수 인력 확보가 핵심인 R&D 특성상 서울에 본사가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울산(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과 거제(대우조선), 영암(현대삼호중공업) 등 전국에 흩어진 조선소의 효율적인 관리도 이유로 꼽는다. 현대자동차도 본사(서울 양재동)와 R&D(경기 화성) 부문을 수도권에 두고 울산과 충남 아산, 전북 전주 등지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 직원은 500여 명 수준으로 1만4500여 명인 현대중공업과 비교할 수 없다”며 “현대중공업 본사가 옮겨가는 게 아니어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말했다.
④ 현대중공업 근로 조건 악화되나
물적 분할에 따른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근로조건 문제도 쟁점이다. 노조는 분할계획서에 신설법인(현대중공업)이 기존 노사 간 단체협약을 승계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임금 삭감과 복리후생 축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중복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근로자들의 우려를 감안해 지난 21일 한영석·가삼현 대표이사 명의의 담화문을 내고 “물적 분할 후에도 근로조건부터 복리후생까지 모든 제도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단체협약 승계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8일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할 때도 “인수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인적 분할·물적 분할인적 분할 땐 회사의 기존 주주가 존속 회사와 신설 회사 지분을 분할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다. 물적 분할에선 기존 주주가 존속 회사 주식만 갖고, 존속 회사가 신설 회사 지분을 모두 갖는 수직 관계가 된다. A라는 회사를 A와 B 둘로 나눌 때 B를 A에서 떼어내 독립시켜 100% 자회사로 삼는 방식이다.
강현우/김보형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