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생과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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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박종우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jwpark@seoulbar.or.kr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동료 중 나 혼자만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2차 시험을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했다. 그때 절실하게 느꼈다. 잘되려면 다 같이 잘돼야 한다는 것을. 골프도 마찬가지다. 스코어를 떠나 동반자들 모두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라운드를 마치는 게 최선이다. 자기만 잘 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나, 동반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언동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생과 골프 모두 참을성이 중요하다. 《영웅문》의 저자 진융은 “사람에겐 세 가지 인(忍)이 중요한데 자신에겐 참을 인(忍), 타인에겐 용인(容忍), 적에게는 잔인(殘忍)”이라고 했다. ‘참을 인(忍) 글자가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속담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견디라는 뜻이다.골프에서 18홀 내내 평탄하게 플레이가 이뤄질 수는 없다. 최소 한 번 이상의 위기가 온다.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 위기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서 참을성이 큰 역할을 한다. 참을 인(忍)의 생김새는 심장(心)에 칼(刀)을 꽂는 형상이다.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의미다. 위기가 닥칠까 봐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위기에 대비할 필요는 있지만 아직 오지도 않은 위기를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꾸준한 연습과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인생은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날 사회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도 말년에 범한 실수로 성과가 빛이 바래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날 범한 실수는 나중에 회복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말년에 발을 헛디디면 이를 회복할 시간과 용기가 모두 부족하다. 골프도 마지막 세 개 홀에서 경기를 망쳐버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이전의 훌륭한 플레이도 쉽게 잊힌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도 인생과 골프가 닮은 점이다.
인생과 골프 모두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이루려고 하면 더 달성하기 어렵다. 오히려 여유 있게 내려놓는 자세로 임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놓치고 있던 부분이 보인다. 골프에서 ‘힘 빼기’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인생과 골프가 가장 닮은 점은 겸손한 자에게 복이 온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겸손한 자세를 갖춘 사람이 존경받는다. 오만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모두 그의 인간성이나 실력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진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무서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