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불법 판치는데…현대重 사태 '정부'는 없다

31일 임시주총 개최 불투명
< 경찰 4200여명 배치됐지만… >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31일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는 울산 전하동 한마음회관을 나흘째 불법 점거했다. 주총을 하루 앞둔 30일 한마음회관 주변에 42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의 임시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30일. 주총이 열릴 울산시 한마음회관 앞에 5000여 명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이 모여들었다. 법원이 이날 오전 “한마음회관 점거를 풀라”고 했지만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이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나흘째 주총장을 불법 점거했지만 정부와 경찰은 지켜만 볼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울산지방법원 제22민사부(재판장 서희경 부장판사)는 이날 현대중공업 노조가 점거 중인 주총 장소를 회사 측에 넘겨주라고 판결했다. 회사 측이 낸 부동산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울산지법은 지난 27일에도 회사 측의 ‘주총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주총장 점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법원이 두 차례나 불법 점거를 풀라고 했지만 현대중공업 노조는 막무가내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태 해결과 중재에 나서야 할 정부, 정치권은 노사 대치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주도한 산업통상자원부와 노사문제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는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개별 기업 문제에 입장을 내놓는 건 부적절하다”며 발을 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은 짧은 논평조차 내놓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거듭된 공권력 투입 요청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와 공권력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내 협력사가 일하는 작업장에 들어가 전기와 가스를 끊고 공장 인근 도로까지 막았다.법원 명령 또 무시한 현대重 노조…민노총 등에 업고 '힘자랑'

30일 울산 전하동 한마음회관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건물 인근엔 오토바이 수백 대가 바리케이드처럼 늘어서 있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끼를 입은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노조원 2000명은 지난 27일부터 나흘째 한마음회관을 불법 점거 중이다. 31일 이 건물에서 열리는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법인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주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법원의 퇴거 명령 거부한 노조울산지방법원 제22민사부는 이날 현대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부동산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주총이 열리지 못하면 대우조선 인수가 늦어져 회사 측이 경제적 손실 등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노조가 점거를 풀고, 회사 측(건물 소유주)에 한마음회관을 넘기라고 명령했다.

법원 집행관은 이날 오후 한마음회관을 찾아 노조에 퇴거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집행관이 명도 집행(법원 명령에 따라 거주자를 내보내는 일)을 시도할 때는 공권력 투입도 가능하지만 충돌을 우려해 집행은 하지 않았다. 울산지법은 27일에도 회사 측이 낸 주주총회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주총장 봉쇄, 단상 점거 등 주총 방해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법원 결정이 나온 날부터 한마음회관 점거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등에 업고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5시부터 현대차 노조와 대우조선 노조 등 5000여 명이 참석하는 ‘영남권 노동자대회’ 집회를 열었다. 금속노조는 1박2일 일정으로 주총일인 31일까지 한마음회관을 봉쇄한다는 방침이다. 현장에선 600여 명으로 추산되는 건물 내부 점거 노조원이 쇠파이프, 화염병과 함께 대소변 등이 든 오물병까지 준비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주민·상인·하청업체 피해 눈덩이

현대중공업 노조의 불법 점거가 장기화하면서 한마음회관 이용자들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 건물엔 학교와 수영장, 헬스장이 있다. 매일 인근 주민 6000명가량이 이용해왔다. 건물 3층에 있는 현대외국인학교 학생 30여 명은 나흘째 수업을 받지 못했다. 회관 내 식당과 커피숍 등 9곳의 상가 영업도 중단됐다. 이들 점포의 하루 매출 손실액은 2000여만원이다. 회관 2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상덕 씨는 “경찰에 찾아가 노조 퇴거 신청도 했지만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울산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현대백화점 동구점 일대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백화점에서 200m가량 떨어진 한마음회관 주변 교통이 통제된 데다 폭력 사태를 우려한 시민들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사내협력사 등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부분파업에 들어간 16일부터 협력사 직원에게 파업 동참을 강요하며 업무를 방해했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노조원이 공장 내 전기를 끊고 가스밸브를 차단하면서 작업 중인 크레인이 멈춰서기도 했다. 한 사내협력사 대표는 “철판을 나르던 크레인이 갑자기 멈추면서 철판이 작업자 위로 떨어져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고 말했다.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현대중공업은 예정대로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마음회관에서 물적 분할을 위한 임시주총을 연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이 주총장 진입을 시도할 경우 막아서는 노조 측과 물리적 충돌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은 64개 중대, 4200명을 한마음회관 인근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주총일 오전 7시30분부터 진입을 시도한 뒤 여의치 않으면 주총장을 변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이 소유한 현대예술관과 울산대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노조도 이를 감지하고 이들 장소에 집회 신고를 해둔 상태다.

김재후/울산=강현우/강현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