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멕시코에도 '관세폭탄'…韓기업 '초비상'

10일부터 모든 제품에 5% 관세
"불법이민 안 막으면 25%"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 난민 억제를 위해 오는 10일부터 모든 멕시코산 제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30일(현지시간) 밝혔다.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타격이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6월 10일부터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불법 이민자가 넘어오는 것이 중단될 때까지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를 극적으로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다면 7월부터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상해 10월 1일 25%까지 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 남부 국경을 통한 이민자 유입을 줄이도록 멕시코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멕시코를 상대로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무역 문제가 아니라 이민 문제로 관세를 부과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멕시코는 즉각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무관세 믿고 왔는데"…가전·車·철강社 '날벼락'

‘북미 지역 수출 무관세’라는 입지 조건을 믿고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건설해 운영해온 국내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최대 20%에 이르는 관세로 인해 제조원가가 올라 제품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을 비롯한 통상 갈등이 고조되면서 자국 산업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TV·차업계 긴급 대책회의

31일 KOTRA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총 203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50.7%)인 103개가 현지 공장을 보유한 생산법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업체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전자업체들이다. 이들은 멕시코에서 TV를 생산해 대부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북미 지역에 판매한 TV는 총 1046만 대로 전체 삼성전자 TV 판매량의 25%를 차지했다. LG전자의 북미 지역 TV 판매량도 582만 대로 전체의 20%를 웃돌았다. 냉장고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체 물량의 3분의 1 정도를 멕시코에서 생산했다. 현지 법인의 한 관계자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관세가 오를 경우 판매 및 수익성에 미칠 영향 등을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자동차와 부품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아자동차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州)에 10억달러를 투자해 2016년 5월부터 연간 30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K3와 리오(프라이드) 등 준중형차 주력 모델을 생산해 북미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등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와 성우하이텍, 동진테크윈 등 협력사들도 기아차를 따라 멕시코에 진출했다. 업계는 기아차가 멕시코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 40만 대로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 화학, 정유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포스코, GS칼텍스, 한화첨단소재도 멕시코에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연간 매출만 총 286억달러(약 34조500억원)에 달한다.

“美 제조업체도 강하게 반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대로 관세가 부과될 경우 멕시코 진출 업체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뿐 아니라 경쟁사들도 동일한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멕시코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총 411만 대로 세계 6위 규모다. 제너럴모터스(GM), 닛산, 피아트크라이슬러(FCA), 폭스바겐 등 기아차의 경쟁사들도 멕시코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TV도 마찬가지다. 소니, TCL 등 경쟁사들이 멕시코에서 TV를 만들어 북미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월풀의 멕시코 내 냉장고 생산량도 삼성, LG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멕시코에 공장을 둔 미국 제조업체들이 이번 조치에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며 “트럼프 공언대로 실제 관세가 부과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선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둔화되고 국가 간 교역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각지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한 제조사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좌동욱/박상용/도병욱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