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병상련 한·대만, 돌파구 찾아라

美中무역전쟁 '샌드위치' 처지
관광·IT·자유무역서 시너지 가능

엄치성 <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 >
한국에는 있고, 대만에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대기업이다.

한국과 대만은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며 지난 5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성장 배경에는 수출 중심 시장경제, 기업가정신, 제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이런 차이 때문에 대만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K팝, K뷰티 등 대표 상품과 1등 정신으로 무장한 한국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오는 국가대표이자, 스포츠 스타와 같은 존재다.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 대만에도 TSMC, 폭스콘 등 간판 기업들이 있지만, 대만보다 그 기업들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중 무역전쟁 등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라는 큰 파고 속에서도 그 존재감과 무게감으로 잘 버텨주고 있다. 배가 클수록 파도에 덜 흔들리는 법이다.

물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인 메이바 커즌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로 대만과 한국을 꼽았다. 양국 모두 1·2위 수출대상국이 중국과 미국인데, 이들 두 나라가 싸우고 있으니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양국은 샌드위치 신세, 수출 중심의 경제소국이라는 점에서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1992년 단교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협력관계는 계속 단단해지고 있다. 대만은 한국의 6위 교역국, 인구 수 대비 1위 방한국이다. 양국 교역규모는 단교 이후 9배나 커졌고 지난해 역대 최고치인 375억달러를 기록했다.양국 협력은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협력 강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문화관광 분야다. 작년에만 대만인 111만 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인 102만 명이 대만을 찾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5월 ‘제44차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를 51년 경협위 역사상 처음으로 부산에서 개최했다. 이유는 대만 관광객 때문이다. 작년 부산을 방문한 대만 관광객은 23만8000명(전년 대비 27.7% 증가)으로 부산과 직항이 연결된 국가 중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였다.

둘째는 4차 산업혁명 분야다. 양국 모두 제조업과 4차 산업혁명 기술 접목에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 시티는 그중 하나다. 대만은 신베이시(新北市) ‘뉴타이베이 스마트 시티’를, 한국은 부산 ‘에코델타시티’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시티는 사물인터넷(IoT), 건설, 환경, 빅데이터 등 여러 산업의 집약체인 만큼 서로 협력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셋째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이다. 양국 모두 차이나 리스크를 낮추고 제3국으로 시장을 넓혀야 하는 상황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관련 공조도 필요하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2%대 저성장을 겪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양국 모두 향후 몇 년간이 용(龍)으로 남을지, 이무기가 될지를 결정짓는 고비가 될 것이다. 다시금 ‘아시아의 쌍룡’으로 불릴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