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그래도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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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법인세 인하 경쟁하는데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순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재고가 쌓이고 외상매출금 회수도 불량해 영업현금흐름 감소폭은 더 크다. 경기 악화로 매출이 줄면 근로자 일시해고나 재배치를 통해 조업도를 줄여야 하는데 노사관계가 경직적이면 이런 대응이 불가능하다. 재고 누적과 영업현금흐름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충분한 비축자금이 없으면 부도 위험이 커진다. 노동 유연성이 낮을수록 비축자금이 긴요한데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는 돈을 쌓아두고 투자 않는다고 윽박지른다.
한국은 최고세율 인상 '역주행'
통상임금도, 도 넘은 검찰 수사도
기업환경은 온통 적대적
그래도 기업은 국민을 믿고
제때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어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휴수당 적용범위 확대는 기업에 큰 부담이다. 노동쟁의 때마다 억지로 받아들인 임시적 수당을 법원이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한국 대기업의 인건비 실질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는 법인세 인하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은 최고세율을 3%포인트 인상하는 역주행을 단행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료 인상도 초읽기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장 증설에 열병합발전소를 끼워 넣었다. 전기료 인상뿐만 아니라 원전 대체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할 목적이다.지속불가능한 정책의 무리한 추진은 낭패를 불러온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는 피난 초기의 말먹이 낭패사건이 등장한다. 성 밖 언덕배기에 남아 있던 마른 잡초를 청군이 불을 놔 모두 태워버리자 병마를 살리자는 명분론이 득세했고 병졸이 깔고 덮던 가마니와 초가지붕 지푸라기가 말먹이로 수거됐다. 한겨울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병졸은 추위에 떨었고 지푸라기도 곧 품절돼 군마가 굶어 죽었다. 추위로 탈진한 병졸에게는 비쩍 마른 말고기 국이 배급됐다.
원전 비중을 대폭 줄이면서도 원전산업을 그대로 지킨다는 발상은 코미디다. 원전은 석탄화력발전과 달리 고정비 비중이 매우 크다. 발전 및 유지관리 단계뿐만 아니라 폐기물 사후관리에도 많은 고급인력이 필요한데 발전량을 줄인다고 소요 인원을 비례적으로 줄일 수는 없기 때문에 단위당 발전단가가 폭등한다. 한국이 탈원전 기조 아래서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유지할 것으로 믿는 멍청한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해외 원전 건설과 보수 계약도 끊길 것이 분명하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일자리를 앗아간 것처럼 법인세 인상이 투자를 몰아내는 여파로 세수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 실업자 증가가 계속되자 정부는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는 긴급조치를 단행했다. 민주노총이 저지에 나섰고 여당 소속 현직 울산시장이 삭발로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법원의 해산명령을 무시하고 주총장을 점거했던 노조는 장소를 옮겨 의안이 통과되자 절차적 위법성을 따지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뜻을 밝혔다. 신성장동력을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바이오헬스 투자를 대통령이 앞장서 독려했지만 삼성바이오 회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장 이후 3년 동안 주가는 대폭 올랐고 자금을 제공한 금융회사는 원리금을 빠짐없이 챙겼는데 ‘사기 상장, 사기 대출’로 몰고 가는 것은 생뚱맞다.《남한산성》의 임금은 근왕병을 불러 모을 격서를 보내기로 했다. 청군이 포위한 험한 산길을 뚫고 격서를 전달할 인물을 찾기는 난제였다. 말만 앞세우는 벼슬아치 중에는 적임자가 없었고 길을 잘 알고 날쌘 대장장이 서날쇠가 추천됐으나 품계와 적진으로 도망할 가능성을 따지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서날쇠의 행적은 소설엔 없지만 동명의 영화에는 상당한 분량으로 등장한다. 천신만고 끝에 군영에 당도했으나 승산 없음을 간파한 근왕병 지휘부가 격서를 못 본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서날쇠를 살해하려다 실패하는 몰염치한 배신이 연출된다.
“이봐, 해봤어?”로 상징되는 정주영 개척정신의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지만 ‘잘못되면 부실경영, 잘되면 특혜’로 몰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삼성의 고위험 연구개발 투자도 집권세력이 다급하게 요청하지만 나중에 어떤 태도로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타이밍이 생명인 기업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정부의 일부 행태가 불만스럽겠지만 일자리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대다수 국민을 믿고 ‘기업가정신’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