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식스' 이정은, US여자오픈서 '메이저 퀸' 등극…상금 랭킹도 세계 1위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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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장애인용 자동차를 타고 어렵사리 투어 생활을 시작한 딸.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딸의 투어 생활을 돕기 위해 고향(전남 순천)을 떠나 경기도 용인에 새 둥지를 튼 부모. 딸은 그런 부모를 생각하며 밤샘 연습도 마다하지 않고 샷을 다듬는 데만 열중했다. 그 결과 국내 무대를 평정한 딸은 미국 진출 첫해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까지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핫식스’ 이정은(23)이 그 주인공이다.
이정은이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오브찰스턴(파71·6535야드)에서 막을 내린 US여자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두에 두 타 뒤진 단독 6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서 2위그룹을 한 타 차로 제친 짜릿한 역전 우승이다.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를 적어낸 이정은은 여자 골프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우승상금 100만달러의 첫번째 주인공이 됐다. 류소연(29),엔젤 인(미국),렉시 톰프슨(미국) 등 공동 2위그룹이 41만2168달러씩을 가져갔다.이정은은 “US여자오픈이라는 메이저 대회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것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악마의 홀’서 승기 잡아
최종 라운드 전반은 ‘탐색’과 같았다.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파4로 조성된 1·2번홀에서 보기와 버디를 맞바꾼 후 9번홀까지 타수를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10번홀(파4)에서는 위기도 맞았다. 두 번째 샷이 그린 뒤로 굴러 내려가 만만치 않은 어프로치를 남겨놨다. 공이 그린보다 아래에 있어 거리 조절도 쉽지 않았다.그런 상황에서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웨지가 밀어낸 공이 깃대를 맞춘 후 홀 바로 옆에 멈춰섰다. 파 세이브에 성공한 이정은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은 건 공교롭게도 ‘악마의 홀’로 불리는 11번홀(파3)에서다. 티샷한 공이 그린 프린지를 맞고 홀 쪽으로 굴러 1.2m 거리에 섰다. 이정은은 퍼트 한번으로 공을 홀컵에 떨어뜨리며 이 대회에서 처음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 대회 평균 점수가 3.4381로 가장 어렵게 플레이된 홀에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버디가 32개에 그친 반면 보기 159개, 더블보기 29개, 트리플보기 이상 5개를 쏟아낸 홀이다.
이정은은 12번홀(파4)과 15번홀(파5)에서 한 타씩을 더 줄였다. 16·18번홀(파4) 보기를 범해 두 타를 잃은 채 먼저 경기를 마쳤지만 그를 추격하던 셀린 보티에(프랑스)가 18번홀에서 친 세 번째 벙커샷을 홀컵이 외면하면서 우승이 확정됐다.
상금 랭킹 1위로 수직 상승이정은은 다양한 기록을 쏟아냈다. US여자오픈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첫 승을 거둔 19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10번째 US여자오픈 챔피언이 됐다. 신인으로서 이 대회 정상에 선 것은 박성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13개 대회에서 7승을 합작했다. 지난 4월 고진영의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에 이어 메이저 대회도 연이어 제패했다.
상금 랭킹은 1위로 뛰어 올랐다. 지난주 상금 랭킹 15위(35만3836달러)에 100만달러를 더해 고진영을 제치고 정상을 꿰찼다. 세계 랭킹은 지난주 17위에서 5위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신인상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이 대회 전까지 신인왕 포인트 452점으로 2위 크리스틴 길먼(미국·288점)을 크게 앞선 가운데 한번에 300점을 더해 752점을 확보했다. US여자오픈 10년간 출전권은 덤이다.헤이니 코 낙잡하게 만든 ‘식스’
이정은은 숫자 ‘6’과 인연이 깊다. 협회에 동명이인 중 여섯 번째로 프로 등록을 해 이정은6가 됐다. 공에 숫자 6을 큼지막하게 적은 공으로 경기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국내 투어(KLPGA)에서 통산 6승을 거뒀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식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외국 선수들과 캐디들이 발음하기 편해서다. 이번 우승도 6언더파로 수확했다. 이정은은 “6라는 숫자가 내겐 럭키 넘버”라며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큰 행운 같아 놀랍고 믿을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정은이 우승하면서 타이거 우즈의 전 코치 행크 헤이니의 코가 납작해졌다. 헤이니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운영 라디오에 출연해 “올해 US여자오픈은 한국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며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 6명의 이름을 대라면 잘 모르겠지만 성(姓)만 얘기해도 된다면 이씨를 대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인종 및 성차별 논란을 일으켜 PGA투어는 헤이니의 라디오 방송 출연을 정지했다. 이정은 우승이 확정된 후 헤이니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의 예상은 통계와 사실에 기반을 둔 전망이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LPGA투어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만일 다시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내용의 답변을 할 것”이라며 “다만 좀 더 신중한 단어로 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이정은이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오브찰스턴(파71·6535야드)에서 막을 내린 US여자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두에 두 타 뒤진 단독 6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서 2위그룹을 한 타 차로 제친 짜릿한 역전 우승이다.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를 적어낸 이정은은 여자 골프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우승상금 100만달러의 첫번째 주인공이 됐다. 류소연(29),엔젤 인(미국),렉시 톰프슨(미국) 등 공동 2위그룹이 41만2168달러씩을 가져갔다.이정은은 “US여자오픈이라는 메이저 대회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것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악마의 홀’서 승기 잡아
최종 라운드 전반은 ‘탐색’과 같았다.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파4로 조성된 1·2번홀에서 보기와 버디를 맞바꾼 후 9번홀까지 타수를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10번홀(파4)에서는 위기도 맞았다. 두 번째 샷이 그린 뒤로 굴러 내려가 만만치 않은 어프로치를 남겨놨다. 공이 그린보다 아래에 있어 거리 조절도 쉽지 않았다.그런 상황에서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웨지가 밀어낸 공이 깃대를 맞춘 후 홀 바로 옆에 멈춰섰다. 파 세이브에 성공한 이정은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은 건 공교롭게도 ‘악마의 홀’로 불리는 11번홀(파3)에서다. 티샷한 공이 그린 프린지를 맞고 홀 쪽으로 굴러 1.2m 거리에 섰다. 이정은은 퍼트 한번으로 공을 홀컵에 떨어뜨리며 이 대회에서 처음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 대회 평균 점수가 3.4381로 가장 어렵게 플레이된 홀에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버디가 32개에 그친 반면 보기 159개, 더블보기 29개, 트리플보기 이상 5개를 쏟아낸 홀이다.
이정은은 12번홀(파4)과 15번홀(파5)에서 한 타씩을 더 줄였다. 16·18번홀(파4) 보기를 범해 두 타를 잃은 채 먼저 경기를 마쳤지만 그를 추격하던 셀린 보티에(프랑스)가 18번홀에서 친 세 번째 벙커샷을 홀컵이 외면하면서 우승이 확정됐다.
상금 랭킹 1위로 수직 상승이정은은 다양한 기록을 쏟아냈다. US여자오픈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첫 승을 거둔 19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10번째 US여자오픈 챔피언이 됐다. 신인으로서 이 대회 정상에 선 것은 박성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13개 대회에서 7승을 합작했다. 지난 4월 고진영의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에 이어 메이저 대회도 연이어 제패했다.
상금 랭킹은 1위로 뛰어 올랐다. 지난주 상금 랭킹 15위(35만3836달러)에 100만달러를 더해 고진영을 제치고 정상을 꿰찼다. 세계 랭킹은 지난주 17위에서 5위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신인상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이 대회 전까지 신인왕 포인트 452점으로 2위 크리스틴 길먼(미국·288점)을 크게 앞선 가운데 한번에 300점을 더해 752점을 확보했다. US여자오픈 10년간 출전권은 덤이다.헤이니 코 낙잡하게 만든 ‘식스’
이정은은 숫자 ‘6’과 인연이 깊다. 협회에 동명이인 중 여섯 번째로 프로 등록을 해 이정은6가 됐다. 공에 숫자 6을 큼지막하게 적은 공으로 경기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국내 투어(KLPGA)에서 통산 6승을 거뒀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식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외국 선수들과 캐디들이 발음하기 편해서다. 이번 우승도 6언더파로 수확했다. 이정은은 “6라는 숫자가 내겐 럭키 넘버”라며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큰 행운 같아 놀랍고 믿을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정은이 우승하면서 타이거 우즈의 전 코치 행크 헤이니의 코가 납작해졌다. 헤이니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운영 라디오에 출연해 “올해 US여자오픈은 한국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며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 6명의 이름을 대라면 잘 모르겠지만 성(姓)만 얘기해도 된다면 이씨를 대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인종 및 성차별 논란을 일으켜 PGA투어는 헤이니의 라디오 방송 출연을 정지했다. 이정은 우승이 확정된 후 헤이니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의 예상은 통계와 사실에 기반을 둔 전망이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LPGA투어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만일 다시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내용의 답변을 할 것”이라며 “다만 좀 더 신중한 단어로 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