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미·중 무역전쟁에 십자포화 맞는 한국
경제는 방전상태인데 이념논쟁만 가득
세계 경제는 튼튼…창의성 살리면 희망

이상진 < 前 신영자산운용 대표 >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최하위다. 지난달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9.4%다. 환율은 적색경보를 보내고 있다. 정부의 부인에도 때아닌 통화개혁 루머가 기승을 부린다. 또 미·중 무역분쟁에 우리만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치권은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집권 4년차 같다”는 말이 집권당에서 나온다. 증권분석가들의 보고서도 비관적이다. 얼마 전까지 하반기 반도체 경기 ‘맑음’이라더니 이젠 톤을 낮춘다.

한편 정부는 추경으로 경기를 진작하려는데 재정적자로 후손들이 고생할 거란 격앙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칠 때 진작에 미국 주식을 못 산 걸 후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지금이라도 금이나 달러를 사고 싶다고 한다. 한국 경제와 증시는 ‘파장’ 분위기다.요즘처럼 ‘시절이 하 수상’한 적은 병자호란(?) 이후 처음이라는 얘기가 여의도 증권가에 나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턱걸이를 하자마자 나라가 방전돼버린 것 같다. 미·중 무역전쟁이 예상보다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라 설상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만 쳐다보는 처량한 신세다.

그래도 ‘이성적 낙관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리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고 셰일가스 혁명으로 석유가 넘쳐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다.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은 불가역적 대세다. 중국에 강력한 견제구를 날리는 것은 좋지만 선을 넘어서면 미국도 상당한 내상을 각오해야 한다. 흔한 말로 때리는 주먹도 아픈 법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1년 뒤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선거 때까지 지금의 호황을 끌고 가야 한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 미국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그래서 무역분쟁은 일몰(?)로 끝나는 한시적 게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관론을 주장하기에는 세계 경제의 주 엔진인 미국 경기가 너무 좋다. 중국도 1분기에 6.4% 성장했다. 일본도 2.4%라는 깜짝 성적을 보였다. 유럽이 다소 부진했지만 마이너스 금리로 일단 면피했다. 요란스런 무역전쟁의 와중치고는 다들 혈색이 좋다. 마치 화려한 액션 동작에 효과음은 크지만 때리는 시늉만 하는 영화를 찍고 있는 듯하다.왠지 우리만 사기당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변동폭이 큰 반도체 경기를 제외하면 전체 수출은 2% 정도 감소했다. 작년이 워낙 좋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준수하다. 중국이 대미(對美) 전체 수출 물량 5400억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맞아도 한국의 수출 감소는 3% 미만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분간 중국의 대미 수출 물량도 그대로다. 대체할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양날의 칼이긴 하지만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아닌 말로 ‘대진운’이 좋으면 부전승으로 본선에 나간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한국보다 15배 경제 규모인 미국의 3%대 성장을 생각하면 충격적이다. 아무리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 해도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과욕이 한몫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 올 게 온 거다.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 저하, 포화상태의 자영업, 4차 산업혁명 진입에 따른 생존게임, 세대 및 계층 갈등,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동시에 임계치를 넘으면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사회적 비용이다. 여기에 미·중 간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국제역학적 마찰비용도 커지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세계 경제가 튼튼할 때 한꺼번에 매를 맞는 게 낫다.

얼마 전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핑크빛 조명으로 물들었다. 방탄소년단(BTS)의 뉴욕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50개 나라의 ‘아미’들이 한국말로 ‘떼창’을 한다. K팝이 세계를 점령했다. 우리 창의성의 일례다. 우린 60년 전 경제개발 시작부터 사람이 유일 자산이었다. 작년 총인구 중 60%인 3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했다. 이런 나라가 없다. 긍정적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의 ‘지식 노마드’ 경제 시대에 특화된 민족이다.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 긴 호흡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