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 확인…대형 부부묘와 유물 1만여 점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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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문화재연구원 "제철산업과 해상교역 거점"경남 창원 현동 유적에서 670여 기의 아라가야 무덤과 배·오리 모양 상형토기, 갑옷과 투구, 말갖춤 등 1만여 점의 유물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아라가야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경남 거제~창원 간 국도건설 현장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일원을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가야 시대 수혈주거지 52기, 4~6세기 아라가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목곽묘) 622기, 돌덧널무덤(석곽묘) 35기, 널무덤(토광묘) 17기, 기타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200여 기를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마산만에서 서쪽으로 3㎞가량 떨어진 봉화산 남동사면에 있는 현동 유적은 삼한문화재연구원이 2017년 8월부터 발굴조사를 벌여왔다.현동 유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5세기 전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목곽묘 2기다. 839호분과 840호분은 다른 고분에 비해 규모가 유독 큰 데다 해발 76m 지점에 나란히 조성돼 있어 부부묘로 보인다고 연구원은 추정했다. 840호분은 길이 8.6m, 폭 4.54m로 지금까지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고분 중 가장 크다. 무구(武具)와 마구(馬具)가 다량 출토됐다. 길이 7.72m, 폭 3.96m인 839호분에서는 모양이 세련되고 굽에 창(窓)이 정교하게 뚫려 있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 등이 나왔다.
출토 유물의 제작 기술과 유구의 규모로 볼 때 840호분의 주인은 남자, 839호분의 주인은 여자로 보이며 당시 최고층의 부부묘로 추정된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또 “유구는 이미 도굴된 상태이며, 토기와 철기는 도굴을 위해 뚫은 구멍인 도굴갱과 무덤 바닥에서 대부분 수습됐다”며 “무덤 바닥에서는 굽다리접시와 철촉, 꺾쇠 등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현동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다양하고 방대하다. 원통형굽다리접시·불꽃무늬투창굽다리접시·기하문 부호가 새겨진 짧은목항아리, 화로모양그릇받침, 컵모양토기 등 토기류부터 덩이쇠·모루·쇠끌·망치·철찌꺼기 등 제철 관련 도구와 흔적들, 미늘갑옷·복발형 투구·목가리개, 고리자루칼, 쇠창, 쇠화살촉 등의 무기류, 유리구슬·귀고리 등의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1만여 점에 이른다. 배를 만들 때 쓰는 어깨넓은쇠도끼(有肩鐵斧·유견철부) 수십 점과 100여 점의 끌도 함께 출토됐다.연구원은 특히 387호분에서 나온 배모양토기와 335호분에서 발견된 동물모양 토기 및 제철 관련 유적에 주목했다. 길이 29.2㎝, 높이 18.3㎝인 배모양토기는 형태가 단순한 통나무배에서 구조가 복잡한 구조선으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인 준구조선이다. 연구원은 “최근 아라가야 중심지인 함안 말이산 고분에서 나온 배모양토기는 흘수 부분이 과장되게 표현돼 있어 육지 인근의 좁은 바다를 다녔던 내해용으로 추정된다”며 “현동 유적의 배모양토기는 노를 고정하는 고리가 없는 범선(돛단배)으로, 국제 항로를 다녔던 외항선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모양토기는 당시 아라가야인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연구원은 해석했다. 몸체는 오리인데 머리는 낙타 모양인 동물모양토기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아라가야인들이 낙타를 알았다면 상당히 먼 지역과 교류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창원을 포함한 진한·변한 지역에서는 양질의 철을 생산해 낙랑, 중국, 일본 등지로 공급했으며 마산, 김해 등의 항구가 그 창구였다”며 “이번 발굴 결과로 볼 때 제철을 기반으로 한 해상교역 세력이 현동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