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 '전 남편 살해' 수사 총체적 부실…CCTV도 유족이 찾아

부실 초동수사로 사건 키워…고유정 동선파악·현장보존도 못해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36)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지만 초동조치 미흡 등 경찰 수사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경찰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이달 1일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고씨를 긴급체포한 지 일주일이 지난 7일까지도 고씨의 범죄와 관련한 이동 경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경찰이 확인한 고씨의 행적을 보면 고씨는 지난달 18일 배편에 본인의 차를 싣고 제주로 왔다.

고씨는 일주일 남짓 지난 5월 25일 전 남편 강모(36)씨와 함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사실이 확인됐다.경찰은 고씨가 전 남편 강씨와 함께 펜션에 입실한 당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강씨가 이틀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27일 오후 6시 10분께 부랴부랴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했고, 이어 2시간 뒤에 112로도 재신고했다.

그 사이 고씨는 같은 날 해당 펜션에서 퇴실했으며, 다음 날인 28일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종량제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 비닐장갑 등을 구입하고, 오후 8시 30분 제주항에서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유유히 빠져나갔다.문제는 고씨의 범행 전후 동선이 담긴 펜션 인근 주택 폐쇄회로(CC)TV 영상을 피해자 남동생이 경찰에 찾아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초동조치가 미흡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실종신고 직후 사건 현장을 찾았지만 모형 CCTV만 확인했을 뿐 고씨의 수상한 모습이 찍힌 인근 단독주택의 CCTV를 확인하지 못했다.

피해자 남동생은 경찰의 초동수사에 문제 의식을 가졌고, 직접 인근을 뒤진 끝에 인근 단독주택의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넘겼다.실종신고 이후 나흘만이었다.

경찰이 신고 초반 제대로 수사에 나섰다면 피의자가 제주를 벗어나 시신을 유기하기 전에 체포할 수도 있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게다가 경찰은 범행 장소로 이용된 펜션 주인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이유로 현장검증 추진은 커녕 범죄현장을 보존하지 않아 펜션 내 혈흔 등 증거물을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다.

그사이 펜션 주인은 표백제로 닦아내며 범행 흔적을 대부분 지워버렸다.

박기남 제주동부서장은 지난 4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내 혈흔 형태 분석 전문가 등을 투입해 현장에 남아있는 비산된 혈흔 형태를 분석, 어떤 범행이 벌어졌는지 추론할 예정"이라고 뒤늦게 수습했다.

경찰은 또 고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25일 전후의 피의자 행적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고씨가 제주로 들어오고 나서 일주일 여인 지난달 25일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지의 동선과 27일 펜션에서 퇴실하고 이튿날 제주를 빠져나가기 전까지의 피의자 동선 등이 안갯속이다.
고씨의 범행동기은 물론 흉기의 출처, 시신의 행방도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고씨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정확한 범행동기를 밝히는 데 애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고씨 진술 등으로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은 제주∼완도행 여객선 항로와 완도항 인근, 경기 김포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여태껏 시신을 찾지 못하면서 수사가 장기화할 조짐도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죄와 남겨진 가족의 명예와 사생활을 고려해 구체적 범죄 내용이나 동선 등에 대해서 정확히 확인해 주기 곤란하다"며 "또 경찰청 차원의 지침이 무리한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현재는 시신 수색과 범행동기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유가족은 7일 오전 '불쌍한 우리 형님을 찾아주시고, 살인범 고유정의 사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을 올려 경찰 수사의 답답함을 표현했다.

유가족은 "살아 돌아올 것이라 믿었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 참혹하고 참담했다"며 "이제 죽음을 넘어 온전한 시신을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그러면서 고씨에게 법적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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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