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주기관부터 건설 불공정 해소 나서야

공기연장 간접비 정상 지급하고
부당특약 개선 등 상생 실천해야

정병윤 <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
축구경기에서 심판은 경기를 운영하고, 선수는 규칙에 따라 경기한다. 여기에 관중의 열기가 더해져 명승부가 펼쳐진다. 이처럼 각 주체 간 조화와 협력은 멋진 경기를 완성해 낸다.

건설산업도 발주자, 원·하도급자, 자재장비업자, 근로자 등 다수 주체 간 유기적 협력을 통해 안전한 시설물을 만들어 내는 산업이다. 그러나 과거 건설산업에서는 이런 협력체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일부 참여자의 불법 하도급, 근로자 임금체불 등 불공정 관행 때문이었다.이로 인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하도급 부당특약 금지, 노무비 구분관리제 등 하도급자·근로자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가 도입됐다. 이를 계기로 산업 내 공정한 게임의 룰이 세워지고 위반시 엄중한 처벌을 통해 정상적 협력체계가 자리를 잡게 됐다.

건설생산체계의 한 축인 발주자에게도 안전 시설물 확보를 위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 특히 공공시설물의 발주기관에는 부당특약 금지, 공사비 부당삭감 금지 등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시공자와 협력해 시민에게 고품질의 시설물을 제공해야 할 책무가 발주기관에도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공사원가 부당삭감, 공기 연장 간접비 지급 거부, 업무 부당전가 등 발주기관에 의한 불공정 행위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2017년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계약상대자의 64.6%가 발주기관의 불공정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불공정 개선과 상생의 대상을 계약상대자 측 참여자로만 한정해 이들에게만 의무와 책임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발주기관은 심판자일 뿐 상생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던 탓이다.그러나 발주기관은 건설 협력체계의 출발점이다. 수직적 생산체계 특성상 상위 단계 발주자로부터 발생한 문제는 고스란히 아래 단계의 원하도급, 근로자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 조사에서도 발주자의 불공정 행위는 공사 품질과 안전에 각각 30.8%, 29.9%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주기관이 하위 단계를 심판하고 벌칙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상생협력을 직접 실천하는 ‘핵심주체’가 돼야 하는 이유다.

먼저 발주기관은 협력체계에서 상생을 위한 출발점임을 인식해야 한다. 더불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자체 감시시스템을 정비하고 개선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자발적으로 상생협력을 실천하는 발주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단기적 예산절감보다는 공사비 정상화와 불합리한 특약 개선이 중장기적으로 비용 절감과 총효용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이 모든 발주기관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불공정 특약을 무효로 하는 법률상 근거를 마련해 공사비 부당삭감에 대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구제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장기계속공사의 공기연장 간접비에 대한 정상적 지급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국회와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적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제도적 기반 위에 모든 발주기관이 불공정 관행 해소에 동참해 지속 가능한 상생협력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