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잔잔한 위트와 고백…하루키의 '소확행'

에세이집 '장수고양이의…' 출간
일본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사진)는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에세이 속 하루키의 일상 모습은 ‘투덜이’에 가깝다. 중학교 시절 선생에게 수없이 맞은 기억이 싫다며 다시는 모교를 찾아가지 않는다거나 “신문이 하루쯤 오지 않아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데 왜 신문 휴간일은 죄다 같은 날짜냐”고 불평하는 게 그렇다. 반면 모래사장에서 자동차 열쇠를 발견한 하루키는 잃어버려 당황해했을 누군가를 홀로 측은해하며 말한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장수 고양이의 비밀》(문학동네)은 일상과 취미생활에서 얻는 성취감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인간 하루키의 관조적 화법과 재치 넘치는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하루키가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직후인 1995~1996년 만화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를 넣어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에세이 60여 편을 엮었다.
하루키는 2000m를 쉬지 않고 수영한 자신에게 감탄한다. 은행 직원의 친절함에 반해 그 은행의 평생 고객이 되고, 어색한 영어 발음을 들키기 싫어 셀프 주유소를 찾아다닌다. 평범하고 소심한 일상 속 즐거움이 느껴지는 내용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장수 고양이’이자 하루키가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부터 길렀던 샴고양이 ‘뮤즈’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에선 영특한 반려묘의 일상을 깊게 관찰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드러난다.

인기 작가이지만 문단 주류에서 벗어난 자신의 고충을 솔직히 토로하고, 비정한 출판계에서 문학인이 가져야 할 책임감도 담담하게 논한다. 때로는 세상사에 감동하고 때로는 투덜대기도 하는 ‘생활인 하루키’의 글에서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하루키가 1986년 소설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종종 에세이에 쓴 표현이다. 바깥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되 휘둘리지는 않으려는 하루키식 개인주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들은 왜 ‘소확행’이 현대인들의 공감을 사며 두루 인용되고 있는지 일깨워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