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라"던 그리스 총리…30년후 국가부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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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파탄' 그리스의 교훈“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
아버지 총리의 11년 복지 퍼주기
건실하던 국가재정 급속 파탄
父가 뿌린 '국가부도 씨앗' 현실로
1981년 그리스 총리가 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취임 직후 각료들에게 내린 이 지시는 30년 뒤 조국을 국가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시초가 됐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 계층 무상 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으로 11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리스 정부가 늘어난 복지 혜택을 감당할 수 없어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서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총리는 공교롭게도 안드레아스의 아들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 정책은 1980년대 그리스 모습과 닮았다”며 “아버지(안드레아스)의 선심성 정책에 대한 ‘청구서’가 아들(게오르게)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국내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황금률’ 버리고 보편 복지로
그리스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재정이 건실한 나라로 꼽혔다. 국가부채비율이 20%대로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절반 수준이었다. 1974년 집권한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은 국가재건을 위한 공공투자부문을 제외하고는 재정적자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황금률(golden rule)’을 적용했다.
하지만 1981년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이 승리하고 파판드레우 총리가 취임하며 황금률은 폐기됐다. 그는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줘야 한다”는 구호 아래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폈다.대표적인 게 공무원 증원이었다. 취임 1년 만인 1982년 정부의 공공부문 임금 지급액은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선별적 복지는 보편적 복지로 전환했다. 소득과 상관없이 전 계층에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시행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1980년 9.9%에서 5년 뒤 15.4%로 뛰었다. 건실했던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치솟은 것도 이 시기다. 1980년 22.5%였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983년 33.6%, 1984년 40.1%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불과 9년 만인 1993년에는 100.3%로 치솟았다.무너진 제조업
재정이 미래 성장동력 확충보다 복지 쪽으로 과도하게 흘러들어가며 그리스 제조업은 빠르게 쇠퇴했다.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미국의 유럽 16개국 원조 제공) 수혜국으로 1970년대까지 조선, 석유화학, 석유정제, 자동차산업 등이 발달했다.하지만 파판드레우 총리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해고를 어렵게 하는 정책을 펴며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취임 1년 만인 1982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45.9% 인상했다. 1973년 그리스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던 남코는 1982년 노조가 3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에 들어가자 공장을 폐쇄했다. 남코는 프랑스 시트로엥과 합작해 생산기지를 중국 등으로 옮겼다.
신민당도 정권을 되찾기 위해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민당은 사회당이 해왔던 방식대로 공무원 수를 늘리는 공약을 발표하고 직능별 노조와 손잡았다. 지지의 대가로 직능별 연금공단을 허용했고 적자는 모두 세금으로 메웠다. 양당의 경쟁으로 그리스에는 한때 150개가 넘는 연금공단이 생겼다.
신민당은 2004년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국가재정은 허약해진 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버티지 못했다. 국채 발행으로 재정사업 비용을 충당했지만 금융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자 ‘재정 불량 국가’의 채권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구제금융 직전에도 “확장 재정”
재정이 거덜난 상황에서도 국민은 복지 축소에 반대했다. 2009년 신민당이 긴축정책을 펴자 국민의 극렬한 반대로 조기 총선이 열렸다. 사회당이 압승했고 총리에 오른 건 파판드레우 총리의 아들 게오르게였다. 게오르게는 확장 재정을 통한 내수 부양을 경제정책으로 제시하며 “구제금융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결국 2010년 5월 IMF와 EU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게오르게는 취임 2년 만인 2011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스는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2600억유로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이었다.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재정확대 정책은 1980년대 그리스와 흡사하다”며 “친노동 정책 때문에 주력 산업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을 무분별하게 늘리면 부담은 후손이 진다는 게 그리스 사태의 교훈”이라고 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