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반전'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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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36년 만에 ‘4강 신화’를 다시 썼다.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정정용 감독은 뛰어난 전략·전술 덕분에 ‘제갈용’으로 불리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고 서른 전에 선수생활을 접었던 그는 2008년부터 유소년만 맡아오다가 나이 50에 드디어 빛을 봤다.
스포츠계에는 무명의 설움을 씻고 스타가 된 역전의 명수가 많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에 오른 박종환 감독도 긴 야인 생활을 거쳤다. 당시 고지대의 희박한 공기에 대비해 국내에서부터 마스크를 쓰고 훈련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그는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을 맡아 정규리그 3연패를 이루는 등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베트남 축구에 ‘마술’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도 58세 이후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 중에는 엄한 호랑이인 그는 평상시 선수들과 스킨십을 늘리는 ‘파파 리더십’으로 ‘박항서 매직’을 이뤘다. 프로야구의 염경엽 감독도 현역 시절 51타석 연속 무안타라는 부진을 겪은 뒤 늦깎이 감독으로 되살아났다.
이들의 극적인 반전은 성실성과 꾸준함에서 나왔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추신수도 꾸준함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메이저리그 200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빅리그 15년 차인 요즘도 경기 7시간 전에 구장에 나온다. 스프링캠프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7시쯤 나올 때 그는 새벽 4시 반부터 나와 개인 훈련에 들어간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36세에 현역 최다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52경기)까지 세웠다.
다른 분야에서도 인생 후반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65세에 KFC의 첫 체인점을 연 커넬 샌더스도 그렇다. 그는 허기를 달래려 닭고기 요리 샘플을 뜯어먹으며 1000여 차례나 문전박대를 당하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창립에 성공했다. 밀크셰이크 믹서 외판원이었던 리에 크록은 53세에 맥도날드를 창업했다.이들은 좌절과 절망의 땅끝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주인공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고, 시련이 클수록 기쁨도 크다. 반전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다. 기독교의 부활 신앙과 욥의 꿋꿋한 자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믿음이 모두 희망의 씨앗에서 싹이 텄다.
정정용 감독은 4강에 오른 뒤 한국팀을 ‘꾸역꾸역 팀’이라고 표현했다. 꾸준하게 발전하며 끈질기게 버틴다는 의미다. 이제 그가 국민 앞에 했던 약속(4강)을 지켰으니, 에콰도르를 꺾고 선수들의 약속(우승)까지 지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