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관리부담 완화된 가업상속공제…혜택 기업 늘어날까

고용·업종·자산 유지 '10년→7년'…정부 "제도 적극 활용 기대"
공제대상·한도는 유지…정치권 '확대' 목소리에 국회서 재논의 가능성

정부와 여당이 11일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 기업이 고용 인원, 업종, 자산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축소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막판까지 당정 간 이견을 보였던 가업상속공제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은 현행 '3천억원 미만'을 유지, 공제 대상 기업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기업의 고용·투자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사후관리 부담을 완화해 경제 활력을 도모하면서도, '부의 대물림' 비판이 일 수 있는 공제대상 기업 확대 여부는 현 수준을 유지키로 한 것이다.

당정은 이번 개편안으로 가업 승계 관련 사후관리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중소·중견 기업들의 가업상속공제 제도 활용이 늘 것으로 기대했다.
◇ 가업 승계 시 고용·업종·자산 7년만 유지…제도 '활용성' 높여
이번 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 기업이 10년 이상 경영을 유지하도록 한 '사후관리 기간'을 완화한 것이 골자다.

지금은 매출액 3천억원 미만 중소·중견 기업이 최대 500억원의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으면 10년 동안 고용 인원을 100% 유지(중견 기업은 120% 이상)해야 하고 업종을 변경할 수 없으며 기업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고용·업종·자산·지분 등의 유지 기간을 7년으로 줄였다.

경영계에서는 그간 "사양산업으로 10년 후까지 기업이 존속할지 자신이 없는데 자식에게 가업을 승계하라고 할 수 있겠나"라는 불만이 있었다.경제 생태계가 급변하는 현실을 고려해 엄격한 기준을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가업상속공제의 연간 이용 건수와 금액은 2015년 67건·1천706억원, 2016년 76건·3천184억원, 2017년 91건·2천226억원에 불과해 제도 활용이 저조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독일 7년(100% 공제 시), 일본 5년 등 사후관리 기간이 우리나라보다 짧은 점도 고려됐다.기획재정부는 "고용·투자 위축 방지를 위해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활용이 저조한 실정임을 고려해 실효성을 높이려 했다"며 "사후관리부담 완화에 따라 많은 가업승계 희망 기업인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자산을 양도할 경우, 양도차익을 모두 합산해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등 형평성 측면의 보완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며 "따라서 이번 공제 요건 완화가 과세 형평과 조세 정의를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제분업→제빵업' 등 업종변경 허용 확대…중견기업 고용유지 의무 완화

사후관리 기간 도중 업종변경을 허용하는 범위는 기존의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에서 앞으로는 '중분류' 내까지 확대된다.

예컨대 '제분업'을 하다가 '제빵업'으로 전환하거나 '알코올음료제조업'을 하다가 '비알코올음료제조업'으로 전환하는 게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가능해진다.

'식료품 소매업'을 하다가 '종합 소매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는 융·복합 산업이 활발해지는 등 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 가업 승계 기업의 유연한 대응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또한, 기술적 유사성이 있으나 중분류 범위 밖에 해당하는 업종으로 변경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승인하는 경우 업종 변경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가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민주당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예컨대 의약품 제조 기술을 활용해 화장품 제조업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후관리 기간 도중 20% 이상 자산 처분을 금지한 현행 조치도 완화된다.

자산 처분이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허용하는 사유가 시행령에 추가될 예정이다.

업종 변경 등으로 기존 설비를 처분하고 신규 설비를 취득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유지 의무는 중소기업의 경우 지금처럼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00% 이상을 유지토록 했다.

다만, 중견기업은 현재 '120% 이상'인 통산 고용유지 의무를 중소기업과 동일하게 '100% 이상'으로 낮춰 부담을 덜어줬다.

기재부는 "생산설비 자동화 등 기업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기존 고용 인원 유지를 넘어 증원하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부담임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여당에서는 '고용 인원'만 기준으로 삼지 말고 '인건비 총액'을 함께 고려하도록 새 기준을 만들자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자칫 '고용 인원을 줄여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줘서 '일자리 정부' 기조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점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개편안에는 기업 부담 완화에 상응해 불성실한 기업인에 대해서는 조세 지원을 배제하는 방안이 신설됐다.

피상속인·상속인이 상속 기업의 탈세, 회계부정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공제 혜택을 배제하거나, 공제액을 추징하기로 했다.
◇ '매출액 3천억원 미만' 대상기업은 안 늘려…'부의 대물림' 비판 감안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의 매출액 한도는 현행 '3천억원 미만'을 유지했다.

여당에서 매출액을 5천억원 또는 7천억원까지 확대하자는 요구가 나왔으나, 정부가 3천억원 미만 유지 입장을 관철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매출액 확대와 축소라는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가업상속공제는 극소수 고소득층을 위한 제도"라며 반대 의견을 내는 상황에서 정부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작년 기준 전체 중견 기업의 숫자는 4천14개로, 이중 매출액 3천억원 미만은 3천471개(86.5%), 3천억∼5천억원 미만은 282개, 5천억∼1조원 미만은 172개, 1조원 이상은 89개였다.

이번에 매출액 기준을 그대로 두면서, 공제대상 기업은 3천471개가 유지된다.

중소·중견 기업이 상속세 감면을 받을 수 있는 한도 역시 현행 '500억원'으로 유지된다.

당정이 일찌감치 의견 일치를 봤다.

기재부는 "국회에 공제대상·혜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의원 입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한편에서는 가업상속공제가 '부의 대물림'을 용이하게 하므로 공제대상 및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며 "대상 기업 확대 여부는 찬반이 대립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 개편안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매출액 기준 확대'는 쟁점으로 재부상할 전망이다.

정부가 개편안을 담은 세법개정안(상속·증여세법)을 9월 초 국회에 제출하면 여야 논의 과정에서 대상 기업의 수와 혜택을 늘리자는 요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매출액 기준을 5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까지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이에 대해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국회에 다수의 의원입법안이 제출돼 있어 (확대 여부를) 논의하게 되겠지만, 앞서 수차례 밝혔듯 공제 한도와 매출액 기준을 올리지 않는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