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학계·언론계 "인터넷 상의 젊은 세대 반한 정서 확산 우려스러워"
입력
수정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 등 새로운 미디어와 신문·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캐치볼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미디어 국수주의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오이시 유타카 게이오대학 교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SNS를 통해 읽고 싶은 정보만 걸러서 접하는 방식)’의 흐름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프레임화하고 있습니다.” (이케하다 슈헤이 NHK 앵커)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일미래포럼, 게이오대 현대한국연구센터가 지난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개최한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언론인들과 학자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고착화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SNS와 신문·TV가 反韓 분위기 캐치볼”
오이시 교수는 일본 언론들이 한일관계가 냉각될 때마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설문조사를 실시, 보도해 한국에 비판적인 의견을 재확인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를 향해 우리나라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레이더를 쐈다고 일본 방위성이 주장하면서 시작한 ‘레이더 갈등’ 이후 마이니치신문이 ‘일본 정부의 대응을 지지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사례로 제시됐다.오이시 교수는 “여론은 발견되고 도출되는 것”이라며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사회의 분위기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자체로도 한국에 비판적인 흐름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뉴스를 주로 소비하는 공간인 인터넷 상에 한국에 비판적인 의견이 대단히 많은 게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 긴장완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일본 언론들이 얼마나 정당하게 평가했는지 의문”이라며 “일본 언론들은 한반도 문제가 발생하면 지나치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필터 버블’을 소개한 이케하다 앵커도 “‘문제인 한국 대통령은 반일’이라는 프레임이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깊게 새겨져서 ‘한일 정부가 협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조차 대단한 일이 돼고 있다”고 말했다.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한국 정부의 입장과 한국 사회의 실상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본 언론의 경로가 좁아진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만 하더라도 청와대와 일본 언론사들의 서울 특파원이 정기적으로 현안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했다.
“韓 언론의 자극적인 ‘워딩’도 문제한일관계를 꼬이게 만드는 한국 미디어의 보도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이케하다 NHK 앵커는 양국의 복잡한 관계를 자극적으로 단순화한 ‘워딩(단어선택)’이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일철 등 강제징용 배상의 대상기업을 ‘전범기업’으로 뭉뚱거려 표현하는 관행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신일철이 한국의 발전 과정에 기여한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전범기업’이라는 한 단어로 ‘이 회사에 대해서는 뭘 해도 된다’는 인식을 한국 언론들이 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이 흔히 쓰는 ‘한반도 주변 4대국 중 하나인 일본’이라는 표현도 “일본이 한국을 심하게 압박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의 정치지형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고미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역사문제 같은 해묵은 과제에 대해 오히려 일본 언론이 더 깊게 공부하고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현재의 양국 관계가 감정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얽혀있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을 걱정스러워 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는 “1965년(한일 국교정상화의 해) 이전으로 되돌아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걸음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양국 언론이 냉정한 접근방식으로 관계회복의 실마리를 찾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코다 테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무지와 일본 정부의 악의가 관계악화의 원인”이라며 “미디어도 정의냐, 악이냐를 판단하기보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전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싣는 매체로 알려진 산케이신문의 미즈누마 게이코 기자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강제징용 판결이나 위안부 합의 등 최근 사안을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 ‘인간의 도리나 옳은 것을 중시하는 나라’로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미네기시 히로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논설위원은 ”안전보장, 경제 등 한일 관계를 받쳐주던 안전판 상당수가 무너졌기 때문에 양국의 ‘톱 레벨’ 차원에서 민간교류를 중심으로 해결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한일 정치가들이 민간교류나 경제협력을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도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SNS를 통해 읽고 싶은 정보만 걸러서 접하는 방식)’의 흐름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프레임화하고 있습니다.” (이케하다 슈헤이 NHK 앵커)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일미래포럼, 게이오대 현대한국연구센터가 지난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개최한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언론인들과 학자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고착화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SNS와 신문·TV가 反韓 분위기 캐치볼”
오이시 교수는 일본 언론들이 한일관계가 냉각될 때마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설문조사를 실시, 보도해 한국에 비판적인 의견을 재확인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를 향해 우리나라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레이더를 쐈다고 일본 방위성이 주장하면서 시작한 ‘레이더 갈등’ 이후 마이니치신문이 ‘일본 정부의 대응을 지지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사례로 제시됐다.오이시 교수는 “여론은 발견되고 도출되는 것”이라며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사회의 분위기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자체로도 한국에 비판적인 흐름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뉴스를 주로 소비하는 공간인 인터넷 상에 한국에 비판적인 의견이 대단히 많은 게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 긴장완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일본 언론들이 얼마나 정당하게 평가했는지 의문”이라며 “일본 언론들은 한반도 문제가 발생하면 지나치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필터 버블’을 소개한 이케하다 앵커도 “‘문제인 한국 대통령은 반일’이라는 프레임이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깊게 새겨져서 ‘한일 정부가 협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조차 대단한 일이 돼고 있다”고 말했다.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한국 정부의 입장과 한국 사회의 실상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본 언론의 경로가 좁아진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만 하더라도 청와대와 일본 언론사들의 서울 특파원이 정기적으로 현안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했다.
“韓 언론의 자극적인 ‘워딩’도 문제한일관계를 꼬이게 만드는 한국 미디어의 보도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이케하다 NHK 앵커는 양국의 복잡한 관계를 자극적으로 단순화한 ‘워딩(단어선택)’이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일철 등 강제징용 배상의 대상기업을 ‘전범기업’으로 뭉뚱거려 표현하는 관행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신일철이 한국의 발전 과정에 기여한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전범기업’이라는 한 단어로 ‘이 회사에 대해서는 뭘 해도 된다’는 인식을 한국 언론들이 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이 흔히 쓰는 ‘한반도 주변 4대국 중 하나인 일본’이라는 표현도 “일본이 한국을 심하게 압박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의 정치지형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고미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역사문제 같은 해묵은 과제에 대해 오히려 일본 언론이 더 깊게 공부하고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현재의 양국 관계가 감정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얽혀있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을 걱정스러워 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는 “1965년(한일 국교정상화의 해) 이전으로 되돌아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걸음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양국 언론이 냉정한 접근방식으로 관계회복의 실마리를 찾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코다 테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무지와 일본 정부의 악의가 관계악화의 원인”이라며 “미디어도 정의냐, 악이냐를 판단하기보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전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싣는 매체로 알려진 산케이신문의 미즈누마 게이코 기자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강제징용 판결이나 위안부 합의 등 최근 사안을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 ‘인간의 도리나 옳은 것을 중시하는 나라’로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미네기시 히로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논설위원은 ”안전보장, 경제 등 한일 관계를 받쳐주던 안전판 상당수가 무너졌기 때문에 양국의 ‘톱 레벨’ 차원에서 민간교류를 중심으로 해결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한일 정치가들이 민간교류나 경제협력을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도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