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26%↓ 예산지원은 81%↑…교육교부금은 '비효율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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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재정 (3) 비효율 교육재정지난 5일 찾은 충북 보은군 회인중학교. 2층짜리 이 학교 본관에선 학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교직원 18명만 조용히 일할 뿐이었다. 교직원보다도 적은 전교생 15명 모두 본관 옆에 있는 1층짜리 신관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본관 20여 개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 학교는 학생 감소로 폐교될 위기를 겪다 지난 3월 주변 초등학교와 행정통합을 했다.
최영순 회인중 교장은 “동네에 아이들이 없어 10년 뒤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교생 60명 이하인 통폐합 대상 학교는 전국 1831개(2017년 4월 기준)에 달한다. 교실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데도 정부가 전국 시·도 교육청에 지급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55조2488억원으로 10년 전인 2009년 30조4279억원에 비해 81.4% 증가했다. 전국 초·중·고교 학생은 2009년 744만 명에서 올해 546만 명으로 26.6% 급감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관련 예산이 증가하는 것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46%는 무조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배정되기 때문이다.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할당하는 ‘칸막이식’ 구조로 인해 인구 변화에 맞는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불가능하다”며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도록 교육예산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교생 15명, 교직원은 18명…교실 텅텅 비어도 교육예산은 '펑펑'
경기교육청은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체육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실내체육관 건립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을 위해 경기교육청은 2017년 450억원, 지난해엔 125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총 1700억원의 예산은 지난해까지 한푼도 집행되지 못했다. 당초 광역자치단체(경기도)와 기초자치단체(관내 시·군)에서 각각 예산의 35%와 15%를 분담해준다는 가정 아래 사업 계획을 짰지만 정작 시·군과는 아무런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예산부터 편성했기 때문이다. 계획도 없이 ‘우선 예산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의 교육청 때문에 더 필요한 곳에 쓰일 수도 있었던 세금 1700억원이 2년이나 비효율적으로 방치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감사원은 올해 2월 “사업예산 편성이 부적정했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학령인구 주는데 교부금은 되레 늘어
경기교육청이 이처럼 허술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던 건 내국세의 20.46%로 고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수요와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시·도 교육청에 지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재정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009년 30조4279억원이던 것이 올해는 55조2488억원으로 10년 새 81.4% 늘었다. 10년간 경제 성장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면서 내국세와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반면 전국 초·중·고교 학생 수는 2009년 744만7000여 명에서 올해 4월 546만7000여 명으로 26% 줄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에도 교부금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시·도 교육청이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엉뚱한 곳에 돈을 쓰는 사례가 왕왕 있다”고 지적했다.지난해 11월 서울교육청이 2019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75억원 규모로 신설한 ‘재해·재난목적 예비비’도 그런 사례다. 서울교육청은 “재난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그런 용도로 쓰이는 ‘일반예비비’가 매년 100억원 규모로 편성돼 있었다. 더욱이 지난 3년간 일반예비비 평균 집행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재해·재난목적 예비비 신설은 불필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청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교직원에게 복지예산을 편성한 사례도 있었다. 전남교육청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관내 교직원에게 암 검진비 명목으로 48억원을 예산에 편성해 집행해오다 감사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교육예산 80% 초·중등 교육에 편중
재정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효율적 예산 배분을 위해서는 현행 ‘칸막이식’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수요에 기반해 편성하는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계에선 “교부금을 없애면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교육 분야 예산은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예산을 전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라도 교부금 제도 개선은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한국 전체 교육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 안팎이다. 그런데 이 교부금을 쓰는 시·도 교육청은 유아 및 초·중등 교육만 담당한다. 연간 교육예산(2019년 74조9163억원)의 80%가량이 유아 및 초·중등 교육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 쓰이는 고등교육 예산은 전체 교육예산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 주체인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한국은 시간강사 고용조차 부담하지 못해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재정 칸막이를 허물어 교육청이 낭비하면서 쓰고 있는 교부금 일부를 대학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교육예산이 초·중등교육에 편중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등교육 과정에 대한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2015년 기준 한국이 1만109달러로 OECD 평균(1만5656달러)보다 35.4% 낮았다. 반면 초등학교 과정에선 한국이 1만1047달러로 OECD 평균(8631달러)보다 28% 높았다.한국은 평생·직업교육 관련 예산도 전체 교육예산의 1%에 불과하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급변함에 따라 평생·직업교육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스스로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 어떤 현금 퍼주기 정책보다 확실한 사회안전망”이라며 “유아 및 초·중등교육에만 지원을 집중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보은=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