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F 규제지침 나온다…기로 선 가상화폐거래소

FATF 권고안에 중소거래소 줄폐업 위기감
비용 증가, 이용객 감소로 '이중고' 우려도
사진=PIXABAY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생존 기로에 섰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오는 21일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에도 적용될 규제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FATF는 지난 2월 암호화폐 취급 기업에 적용되는 권고안을 내놨다. 1000달러(약 118만원) 또는 1000유로(약 133만4000원) 이상의 암호화폐 거래자 이용정보를 수집해 자금세탁방지(AML)에 나서라는 게 권고안의 골자다.FATF 권고안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37개 국가가 따르고 있다. 강제력은 없지만 지키지 못한 국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글로벌 금융시스템 접근 권한을 잃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사실상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도 암호화폐와 관련해 FATF 권고안을 따르겠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한 만큼, 21일 나올 규제 지침은 곧바로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기업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 FATF 권고 준수가능 거래소 있나문제는 암호화폐 자체가 기술적으로 모든 거래자들의 신원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 신원인증절차(KYC)를 진행한 거래소 내부 이용자들의 정보는 파악 가능하다. 그러나 이용자에게 암호화폐를 보낸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하기는 매우 까다롭다.

예컨대 A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입한 사용자가 이를 개인 암호화폐 지갑으로 이동시킨 후 다시 B거래소로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개인 지갑 소유권자가 명확하지 않아 A거래소와 B거래소가 서로 장부를 공유한다 해도 거래자 정보를 완벽하게 특정할 수 없다. 업계가 FATF 권고안을 수용해 '글로벌 거래소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이용자 특정에는 한계가 있단 뜻이다.FATF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시스템 유지·관리 비용이 급증하는 것도 관건이다. 당장 유지 관리도 힘든 중소 거래소들은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대형 거래소들도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업계 시선은 FATF의 세부 지침에 이러한 특수성이 얼마나 반영될지에 쏠린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고강도 지침이 나올 경우엔 대부분 거래소가 존폐 기로에 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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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코인은 사실상 '퇴출 예고'암호화폐 거래자들의 신원 정보를 파악하라는 FATF 규제는 송금인을 파악할 수 없는 '다크코인(익명 거래가 가능한 암호화폐)' 퇴출도 예고했다. 다크코인 퇴출은 이미 업계에서 일부 논의되던 사안이지만 FATF 규제안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일례로 일본 금융청은 작년부터 암호화폐 거래소에 다크코인 퇴출을 지시했다. 다크코인 거래를 철폐한 거래소에만 금융청이 암호화폐 거래소 인가를 내주는 식이다. 업계는 FATF 권고안이 도입되면 앞으로 이 같은 형태의 규제가 보편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FATF 권고안에 대비해 올 3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특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암호화폐 취급 업소(거래소)들이 금융정보분석원에 불법의심거래 및 고액현금거래를 보고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다크코인 퇴출이 확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 거래소 떠나 거래 음성화 우려도

단 FATF의 강력한 수위의 규제가 도입될 경우 반작용으로 암호화폐 거래가 음성화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제프 호로위츠 최고준법감시인(CCO)은 "FATF 규제안을 적용하면 개인간(P2P) 암호화폐 거래를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이용자들이 규제를 피해 P2P 거래를 택할 경우 암호화폐 거래 추적이 더욱 힘들어져 FATF 의도와 달리 도리어 자금세탁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FATF 권고안으로 인해 늘어나는 운영 비용과 줄어드는 이용자로 '이중고'를 겪을 상황에 처했다.

거래소 외에도 자산운용사, 펀드, 엑셀러레이터, 프로젝트 등 대다수 관계자들이 FATF 권고안의 영향권에 포함돼 업계는 FATF 지침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한 업계 관계자는 "FATF 권고안은 암호화폐 산업 제도권 진입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라며 "FATF 세부 지침에 따라 여러 혼란이 발생하며 과도기를 겪겠지만 이를 통해 산업이 본격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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