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일단 덮고 보자"…서울 아파트 공급, 쪼그라들 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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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 분양가 규제안 발표 이후"서울 곳곳 재개발·재건축 현장 마다 난리입니다", "통장 있으면 뭐하나요. 써먹을 데가 없습니다", "보통 부자가 아니고선 후분양으로 일시에 몇십억 주고 아파트를 누가 주고 살 수 있나요?"….
서울지역 후분양·분양연기 잇따라
새 아파트 분양가 통제로 공급 힘 잃어
분양가 공개항목 이미 62개로 늘려도 '불신'
서울살이가 더 힘들어질 모양새다. '가격 인하'를 기대하면서 분양가를 통제하고 나섰더니 후분양이나 분양 연기 등으로 '공급 중단'을 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새 아파트 공급이 되어야할 곳에서 현장을 어떻게 덮을지를 계산하고 있다.서울에서 새 집을 장만해 직장에 가깝게 다닐 수는 없을 것일까. 정부의 바람대로 3기 신도시에서 집을 분양받아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게 최선일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 6일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을 발표한 후, 분양을 준비하고 있던 서울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다짜고짜 분양가를 최대 10%포인트를 낮춰 팔라고 하니 조합원들은 잇달아 '공급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알려진대로 서울 강남 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 아파트인 '래미안 라클래시'는 후분양을 추진하기로 했다. 후분양 방식으로 공급하면 HUG의 분양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어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초 무지개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서초 그랑자이’, '둔촌주공'의 재건축 사업도 줄줄이 후분양을 검토중이다.강남 뿐만이 아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서울 전반으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이달 분양 예정이었던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9구역을 재개발하는 'DMC 금호 리첸시아'도 분양일정을 일단 미루기로 했다. 450가구 중 265가구를 일반 분양할 예정이던 단지다. 다만 후분양 카드는 논의는 추후에 할 것으로 알려졌다.HUG의 개선안에 따르면 신규 분양 아파트 분양가는 3가지 경우의 수로 결정된다. 우선 인근에 최근 1년 안에 분양한 아파트가 있을 경우는 그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지 못한다. 또 분양 후 1년 이상 지난 아파트만 있다면 그 아파트의 분양가에 시세 상승률을 반영하되 상승률은 최대 5%까지만 적용한다. 준공한 아파트만 있을 경우에는 주변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이 단지의 분양이 연말을 넘기게 되면, 지난해말 SK건설이 수색9 재정비촉진구역을 재개발한 'DMC SK뷰'와 1년 이상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 가재울 뉴타운에서 연말부터 대규모 입주가 예정됐다. 신규 아파트들의 시세에 따라 분양가 조절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가재울 뉴타운에는 오는 12월 DMC에코자이(1047가구)가 준공되고 내년 2월 래미안DMC루센티아(99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가재울 뉴타운 9구역은 최근 분양한 아파트의 분양가에 따르기 보다는 주변 시세를 반영한 분양가를 따르는 쪽으로 선회한 셈이다. 그러면서 공급을 미루게 됐으니 일대에서는 '공급 가뭄'이 예정됐다. 조합 관계자는 "비단 이러한 선택이 우리 뿐이겠는가"라며 "억지로 기간을 벌리고 공급을 미루면 결국 손해보는 건 내 집 마련을 기다리는 실수요자"라고 꼬집었다.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은 그야말고 찍어누르기식 산정법이다. 역세권이건 땅값이 비싸건 어떤 건설사건 사업기간이 얼마나 걸렸던 상관없다는 얘기다. 서울이 어떤 곳인가. 국토교통부가 올해 1월1일 기준으로 매긴 작년 대비 공시가격 상승률이 14.02%인 지역이다.
정부는 그동안 분양가를 잡겠다면서 '덧셈법'을 강조해왔다. 이른바 절대값이다. 분양가 공시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확대하고, 공공분양부터 이를 시행했다. 올해 위례신도시에서 분양된 아파트들은 이에 따라 62개 항목을 공개했지만, 결론은 '못 믿겠다'라며 조사중이다. '항목 전체를 다 공개해도 어차피 두드려 맞을 건 뻔하다' 는 현장의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분양가 산정을 어떻게 해도 비싸고, 어떻게 해도 못 믿겠다는데 누가 아파트를 공급하겠는가. 정부는 아파트 분양을 선분양에서 후분양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공급 공백을 어찌 메꿀지 대안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건 간단한 시장의 원리다. 가격부터 통제한 시장에서 과연 수요·공급이 어떻게 움직일까. 정부가 예측한 시나리오 중에 현재의 상황이 있기를 바란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