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도급 '불법파견 판정' 남발 안된다

"판단기준 모호, 판결도 오락가락
근로자에게 관대한 분위기 영향
선진국선 드문 형사처벌도 가혹"

윤기설 < 한국좋은일자리 연구소장 >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갈등 가운데 하나가 사내하도급을 둘러싼 불법 파견 문제다.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지휘·명령권이 어디에 있느냐가 ‘불법 파견’과 ‘적법 도급’의 판단 기준이다. 원청(사용업체)이 사내하청근로자에게 직접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면 불법 파견이 되고, 근로자를 제공한 도급업체(사내하청)가 지휘·명령하면 적법 도급이 된다. 하지만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을 가리는 잣대가 모호하다 보니 적법 도급 기준에 맞춰 하도급 근로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도 불법 파견 딱지가 붙기 일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불법 파견을 면할 수 있느냐”는 기업들 하소연이 잇따른다.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고용노동부 판정이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원에서도 1심과 2심, 3심을 거치면서 불법 파견과 적법 도급 판결이 수시로 바뀐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크레인 운전 근로자 15명은 2011년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직접고용) 소송’을 제기했다. 1심(2013년)은 ‘적법한 도급’이라고 판결했지만, 2심(2016년)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법원은 웬만하면 근로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다 보니 불법 파견 판정이 줄을 잇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4년 10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근로자 1200명을 원청업체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 내용을 뜯어보면 ‘왜 불법 파견인지’ 헷갈린다. 서울중앙지법은 도급 계약 때 약속한 근무시간, 작업속도 결정 등 최소한의 지휘·명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원청과 도급의 업무가 같은 장소에서 이뤄져 원청업체 관리자의 지휘·명령권을 인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고용부가 설정한 가이드라인을 원청이 도급업체에 준수하도록 권유한 것조차 하청근로자에 대한 노무지휘권 행사로 판단했다. 이는 법원이 파견법을 도급금지법처럼 해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청 기업들이 외부에 도급을 주지 말고 직접 생산 활동을 하라는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인 분위기도 불법 파견 시비를 부추긴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018년 8월 현대·기아차의 사내 하도급 실태를 조사하고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라고 고용부에 권고했다. 고용부는 이 권고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직접고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개혁위는 위원 구성이 노동계에 편향돼 있어 공정한 판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파리바게뜨에 대한 고용부의 불법 파견 결정 역시 사회 분위기에 휩쓸린 측면이 크다. 고용부는 2017년 9월 파리바게뜨에 가맹점 근무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고용하도록 지시했다. 파견업체 소속인 기사들에게 가맹 본사가 업무지시를 해온 것이 일종의 변칙 고용으로 ‘파견근로자 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가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불법 파견으로 본 것이다.불법 파견에 대한 정부 결정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일자 파리바게뜨가 자회사 해피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 5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키로 하고 문제를 마무리했다. 한국처럼 도급 업무에 대해 불법 파견 판정을 남발하는 나라는 없다.

기업들은 불법 파견 판정이 늘어나는 데다 형사처벌까지 가해지자 이중 삼중으로 힘들어한다. 선진국들은 제조업체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고 도급에 대한 잣대도 한국처럼 까다롭지 않다. 불법 파견에 대한 형사처벌은 아예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는 대기업 오너나 대표에게 툭하면 불법 파견 죄목을 씌워 형사처벌까지 가하는 게 제대로 된 법치국가의 역할인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