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워치] 일본 신입사원 절반이 전직을 꿈꾼다는데

한경DB
‘평생직장’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도 옛말이 됐지만 여전히 대다수 일본 기업의 채용 시스템은 종신고용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구축된 일본의 채용문화가 반영된 것이 대규모 일괄공채와 전공불문의 채용 관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완성된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직원을 채용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재교육을 시켜 회사가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생각이 담긴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연공서열형 임금시스템도 여전히 일본 기업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금기시됐던 전직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 신입사원을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일손부족이 심화된 영향으로 일본 젊은이들이 취업하기 손쉬운 환경이 조성된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선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시대 변화상을 반영하듯 일본 신입 사원의 절반가량이 입사 직후부터 이직을 꿈꾸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취업 전문기업 디스코가 실시한 조사에서 입사 1~2년차의 젊은 직원 50%가까이가 이직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80명의 응답자 중 ‘당장 이직하고 싶다’는 응답은 4%였습니다. ‘언젠가는 전직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41%였습니다. ‘이미 전직을 했다’는 2%의 응답까지 합치면 전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비율이 47%에 이릅니다. 오랫동안 일본 사회생활을 불문율과 같았던 ‘한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한다’는 사고가 젊은 층에선 급격히 기반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젊은 직장인들이 전직을 고려하는 배경으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주로 꼽혔습니다. ‘업무 내용’이 기대를 밑돌아 전직을 고려한다는 응답이 56%(복수 응답)였습니다. 막상 입사하니 “잡일밖에 안 시킨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교육을 받았던 젊은 세대에게 보수적인 일본 기업문화가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사풍과 조직 분위기가 맞지 않다‘는 응답도 41%에 달했습니다. 일과 여가의 균형, 기대와 다른 연수교육 내용, 생각 보다 미진한 대우 등도 전직 고려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전직 타이밍은 언제일까요. 전직 시기와 관련해선 ‘일단 3년 동안은 전직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53%로 가장 많았습니다. 입사 초기 기간은 경력의 기초를 쌓고, 이직할 후보 직장군과의 비교를 할 시기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근무 기간에 관계없이 언제든 적극적으로 전직해야 한다’는 응답도 39%로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습니다.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듯 ‘정년까지 같은 회사에 근무할 것’이라는 응답은 8%에 그쳤습니다.이밖에 전직을 위해 갖춰야 할 자질로는 영어와 프로그래밍 기술 등이 꼽혔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인구구조 변화와 친시장적 경제정책의 영향 등으로 일본에선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취업의 질에 대해선 여러 가지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고용환경 변화가 오랫동안 지속됐던 일본의 기업문화, 채용문화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과연 종신고용을 전제로 한 일본의 기업문화, 채용문화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