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업계 '거래소의 메릴린치 제재' 불만

"美 시타델證 불공정거래 혐의 확정 안됐는데
증권사부터 제재하겠다니"

19일 시장감시위 세 번째 회의
한국거래소의 미국 시타델증권 위탁 증권사인 메릴린치 제재를 앞두고 금융투자회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거래소가 알고리즘 고빈도매매 부정거래에 대한 아무런 원칙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규제”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시타델증권의 불공정거래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회원 증권사를 먼저 제재하는 건 순서도 맞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처럼 거래소와 업계 의견이 크게 갈리면서 시장감시위원회도 6개월 가까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본지 6월 11일자 A1면 참조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 시장감시위는 19일 메릴린치 제재 안건 관련 세 번째 회의를 연다. 지난 3월부터 지난달 사이에 두 차례 회의를 했지만 이례적으로 시장감시위원 사이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앞서 시장감시위 사전회의 격인 규율위원회도 1월부터 3월까지 세 차례나 회의를 열고서야 5억원 미만 수준의 회원제재금을 통과시켰다. 거래소 관계자는 “시장감시 관련 제재 안건을 반년가량 심의한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만큼 법적으로 쟁점이 많고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시타델증권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제재 권한이 없다. 다만 메릴린치에 대해선 시장감시 규정에 따라 자율규제 차원에서 감리 조치를 할 수 있다. 시장감시 규정 4조(공정거래질서 저해행위 금지)에서 금지한 ‘과도한 거래로 시세 등에 부당한 영향을 주거나, 오해를 유발하게 할 우려가 있는 호가를 제출하거나 거래를 하는 행위’를 위반했다는 게 거래소 판단이다.

메릴린치는 법률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임하고 강력 대응하고 있다. 제재안이 확정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부정거래를 수탁한 증권사’란 평판 추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투자회사들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고빈도매매를 적지 않게 수탁하고 있어 ‘남일’이 아니라는 분위기다.금융투자회사들은 외국인 고빈도거래가 직접주문전용선(DMA: Direct Market Access)을 통해 이뤄지는 알고리즘 매매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한다. 한 준법감시인은 “거래소도 알고리즘 고빈도매매 관련 부정거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며 “시장에서 알고리즘 부정거래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는데 부정거래를 수탁했다고 제재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2010년 ‘알고리즘 위험관리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지만 불공정거래 관련 내용은 한 줄도 없다.

지난해 8월만 해도 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메릴린치 건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코스닥 개인투자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자 거래소 담당 임원은 “현재로선 허수주문, 인위적인 고가주문 등 불공정 거래행위는 안 보인다”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거래가 너무 많으면, 유동성이 많은 종목 위주로 거래를 하도록 메릴린치에 권고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작년 10월께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감리 제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증권사 준법감시인은 “국내에서 알고리즘 고빈도매매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는 이번이 처음 있는 현안”이라며 “시장교란 혐의도 뚜렷하지 않은데 불공정거래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메릴린치를 먼저 제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알고리즘 고빈도매매 관련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메릴린치 대응에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며 “과거에도 심리에 앞서 감리 조치를 확정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거래소 감리

증권사 등 회원의 매매거래 활동 또는 투자자와의 수탁관계에서 공정거래 질서를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준수여부를 감독하는 자율규제. 한국거래소는 시장감시 규정에 따라 제명, 6개월 이내 회원자격 또는 매매거래 정지, 10억원 이하 회원제재금 부과, 경고, 주의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