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1년…업무시간 단축만으론 한계

Let"s Study
(1) 생산성 향상 전략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오후 5시30분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앞에서 퇴근한 연구원들이 셔틀버스를 타러 가고 있는 모습이다. 마곡동 일대는 이때부터 교통정체가 시작된다. 한경DB
주 52시간제가 확산되면서 업무 효율성 향상 방법을 고민하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워크다이어트를 시도하는데, 실상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가짜 워크 다이어트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워크다이어트 노력이 업무시간 다이어트에 그치는 경우입니다. 업무를 줄이지 않으면서 업무 시간만 단축하는 다이어트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었던 일을 왜 지금까지는 긴 시간에 걸쳐 했을까요. 주어진 일을 마쳐도 어차피 상사 눈치를 보느라 정시에 퇴근하지 못할 분위기라서 서둘러서 일할 필요가 없고, 일을 일찍 끝내면 다른 일이 더 생기는 부작용도 있으니 밀도 있게 일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이런 회사들이 주 52시간제를 맞아 업무시간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근무시간이 주 평균 52시간에 가까워지면 정보기술(IT) 시스템에 이른바 ‘빨간 불’이 뜨도록 만들었습니다. 대기업 인사팀은 주 52시간 한계 가까이 근무시간이 기록된 직원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카드키로 입력한 근무시간 중 매 시간 10분씩 자리를 비우는데, 이게 흡연 시간이라면 근무시간에서 제해주세요’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렇게 하면 하루 근무시간 중 점심과 휴식을 합쳐 2시간 정도 빠집니다. 일전에 만났던 한 관리자는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제도 시행 이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주 52시간을 채우는 게 무척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고요. 근무시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자 많은 직장인이 흡연과 잡담 시간을 줄이고 점심시간도 알차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좋은 변화지만 이것이 곧 업무 다이어트는 아닙니다. 낭비 시간 다이어트일 뿐입니다.

핵심업무 중심으로 다이어트를

두 번째, 엉뚱한 워크다이어트를 하는 경우입니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직원들이 일을 덜하고는 있는데 엉뚱하게도 핵심업무를 덜해서 기업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외곽과 경기 일대에 있는 대기업의 인근 도로에는 퇴근 시간에 통근 버스로 정체가 발생합니다. 그날의 업무를 다 마치지 못하더라도 퇴근 버스를 타야 하니 ‘오늘은 이만’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직원들이 많은 것이지요. 이 바람에 프로젝트의 내부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는 신문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프로젝트 계획부터 현실적으로 다시 만들어 해결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생산성 하락이 불 보듯 뻔합니다.이런 현상은 비핵심 업무를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 직원이 핵심 업무를 놓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비핵심 업무란, 불필요하지만 참가하지 않으면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는 회의, 상사의 취향에 맞춰 보고서를 만들고 수정하는 작업, 상사가 권한 위임을 하지 않아 담당자가 수시로 상사를 찾아가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 등을 말합니다. 상사의 입맛에 맞춰 발표자료의 글자체를 수정하는 작업에 시간을 빼앗긴 직원들이 정작 자기 업무를 마치지 못하고 정시에 퇴근한다면 그 직원은 본의 아니게 엉뚱한 업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들이 파워포인트 제작과 발표를 금지하고 원격화상회의를 도입하는 등 효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전과 체면을 따지는 관리자들이 있는 한 핵심 업무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해법은 있습니다. 업무시간 다이어트는 그만하고 업무 분류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를 구분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에 빗대어 업무 종류를 분류해보겠습니다.

첫째, 농축된 에스프레소 같은 핵심 업무. 지식 노동의 상당 부분이 에스프레소와 비슷해서 지식과 경험을 농축해야만 밀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하나 쓰려 해도 최소 2~3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더해야 하지요. 기업들이 집중근무제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주일에 몇 시간씩 집중근무제를 도입해서 직원들이 에스프레소 업무에 몰입하게 유도해 보면 어떨까요.일전에 만난 직장인이 자신만의 에스프레소 업무 방식을 소개해줬습니다. 그는 1주일에 이틀 정도 일찍 출근해 오전 7시부터 2시간 동안 사람이 없는 회의실에서 업무를 합니다. 자기만의 집중근무제를 하는 것이지요. 오전에 집중력을 다해 1시간 근무하면 오후 2시간 분량의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1주일에 두 번만 개인적 집중근무제를 하면 매일 정시 퇴근해도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게 그의 조언이었습니다.

카페라테 같은 워크 다이어트를

둘째, 절반 이상이 우유인 카페라테 업무. 지식노동자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지식에 올라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의 대명사인 아이폰을 보면서 신기술이 가득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묶어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해낸 상품개발자의 영민한 능력에 감탄하지요. 고급 지식마저도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요즘, 지식의 양은 더 이상 지식노동자의 근본적 능력 차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이미 있는 정보와 지식을 재구성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품을 만드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같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개인 간, 부서 간 소통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지식과 지식을 결합해 새로운 상품,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유도합니다. 이런 까닭에 카페라테 업무도 다이어트 대상이 아닙니다.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직원이 상사에게 업무 상황을 이해시키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보고 회의는 카페라테 업무가 아닙니다. 일전에 한 기업에서 직원대상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관리자에게 업무를 보고하는 회의가 너무 잦고 시간이 길다. 기업 대표는 이 문제의 원인을 이렇게 파악했습니다. 관리자가 업무를 모르니 직원들이 보고하느라 시간을 소비한다고요. 관리자도 업무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직원들의 문제를 적절하게 코칭한다면 어느 직원이 보고 회의가 길다고 하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재미난 드라마를 보면서 방송 횟수가 너무 많고 방송 시간이 길다고 투정하는 시청자는 없습니다. 관리자가 제공하는 의사결정과 코칭이 효과적이라면 직원들은 회의시간을 반깁니다. 회의의 품질을 높여 다이어트 대상이 아닌 카페라테 업무로 만드세요.

셋째, 자판기 커피 업무. 반복적 업무는 자판기처럼 반자동화해 시간을 줄여야 하는 다이어트 대상입니다. 지식 노동의 자동화 시스템은 표준화된 절차, 매뉴얼, IT 자동화로 요약되죠. 단순 반복형 업무에 표준화된 업무 절차와 템플릿만 적용해도 효율성이 가파르게 오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업무를 자동화하기 전에 그 업무를 그만둬도 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없애야 할 일을 자동화하는 오류도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해서 늘 일정에 쫓기고 있나요. 그렇다면 워크다이어트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에스프레소 업무에 집중해 성과를 배가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용성 <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