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 립스틱 없어서 못팔아요"…K뷰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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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면세점으로 몰려오는 럭셔리 화장품빨강 밑창 하이힐로 유명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은 지난 13일 서울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10층에 뷰티 매장을 열었다. 이 브랜드가 면세점에 매장을 연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소비자들이 몰려들었다. 중국인, 일본인이 많았다. 이들은 한 개에 98달러짜리 립스틱을 쓸어 담았다. 일반 매장에서 구입하면 100달러를 훌쩍 넘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립스팁’으로 불리는 이 제품은 재고가 없어 못 팔 정도였다. 크리스찬 루부탱 뷰티 매장은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요즘 글로벌 럭셔리 뷰티 브랜드가 서로 들어오겠다고 해 매장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테스트베드 된 韓 면세점
韓 면세점은 '큰손'들 플랫폼
한국 면세점에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몰려오고 있다. 특히 최근 화장품 사업 강화에 나선 명품 브랜드가 한국 면세점을 테스트베드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세계 최초 면세점 매장 많아
크리스찬 루부탱뿐 아니다. 올 들어 화장품 사업을 재개한 구찌도 같은 날 신세계면세점에 매장을 열었다. 홍콩에 이은 두 번째 구찌뷰티 아시아 면세점 매장이다. 여기서는 립스틱과 향수가 인기다.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몰려와 매일 긴 줄이 생기고 있다. 매장 직원은 “뉴트로 디자인이 20~30대 젊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에는 이외에도 E.S.T 샹테카이 케라스타즈 어딕션 등 세계 최초 뷰티 면세점 매장이 있다.한국 면세점은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행사장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원래 럭셔리 호텔을 빌리거나 본사 사옥에서 하던 행사 무대를 한국 면세점으로 옮긴 셈이다. 메이크업쇼, 칵테일 파티, 신제품 체험 등이 주된 프로그램이다. 롯데면세점 본점 VIP라운지(스타라운지)가 대표적 공간이다. 작년 8월 입생로랑을 시작으로 샤넬 라메르 슈에무라 라프레리 등이 연이어 행사를 열었다. 리스트에 있는 고객 대신 면세점 VIP를 주로 초대했다. 브랜드를 알리는 데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면세점에서만 선보이는 단독 상품도 한국에는 유독 많다. 신라면세점은 올 들어 매월 뷰티 브랜드와 협업해 단독 상품을 내놓고 있다. 1월 록시땅, 2월 크리니크, 3월 설화수, 4월 SK-Ⅱ, 5월 라프레리, 6월 톰포드 등이다. 지금까지 19개 브랜드 38개 단독 상품을 선보였다. 신라면세점은 또 올초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에스티로더 디오르 랑콤 샤넬 SK-Ⅱ 설화수 등 6개 브랜드의 체험 매장을 내기도 했다.
한국서 통하면 세계서도 통한다한국 면세점으로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달려오는 가장 큰 이유는 확장성 때문이다. 한국 면세점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 한국 면세점에 입점하면 한국은 물론 시장이 큰 중국과 일본에도 제품을 소개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한국 면세점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이 한국 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뒤 자국으로 돌아가 판매한다. 면세점 관계자는 “따이궁이 구입한 화장품은 주로 웨이신, 위챗 등 중국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판매되는데 주요 소비자가 20~30대 젊은 층”이라며 “이들이 중국에서 유행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글로벌 뷰티 브랜드로선 따이궁 채널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살피는 데도 한국 면세점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 뷰티업계에서 한국 소비자는 까다롭고 신제품을 쉽게 받아들이는 ‘코덕(코스메틱 덕후: 화장품 마니아)’으로 여겨진다. 한국 코덕으로부터 얻은 좋은 반응은 곧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다. 나스 입생로랑 등 글로벌 뷰티 브랜드들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 상품을 출시하기 전 한국에서 먼저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매출도 많이 나온다. 한국 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18조9601억원을 거뒀다. 이 가운데 60%가량이 뷰티 관련 매출로 추산된다. 한국 면세점이 연간 약 11조원 규모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K뷰티’의 힘이 글로벌 럭셔리 뷰티 브랜드를 한국의 면세점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안재광/민지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