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석유관리원이 물꼬 튼 직무급, 공공기관들 전면 시행해야

‘적자’ ‘비리’ ‘파업’ 같은 부정적 뉴스가 넘쳐나는 공공부문에서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석유관리원이 공공기관 최초로 일의 중요도와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급제를 내달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직원 수 400여 명의 작은 공공기관이 거대 공공부문 개혁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직무급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거대노조들이 “공공성 훼손과 임금감소가 우려된다”며 거세게 반대하자 도입 ‘강제’에서 ‘권고’로 발을 뺐기 때문이다.

석유관리원은 이런 상황에서 직원 90%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손주석 석유관리원 이사장이 작년 6월 취임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띄우고 1년간 공 들인 성과다. 직전 정부가 도입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기하고 ‘노조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쉼없는 노사 대화로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혀간 석유관리원을 ‘케이스 스터디’하고, 다른 공공기관으로도 전면 확대해야 할 것이다.직무급제는 ‘정년 추가 연장’ 등 노동계 현안의 해법으로도 적극 고려돼야 한다. 연공서열과 근속연수를 따지는 현행 ‘연공급’은 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떠넘기는 탓에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해소가 요원해진다. 고령 근로자의 직무와 역할에 걸맞은 임금조정 없이는 정년연장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고, 청년 취업 등 고용시장 전반의 선순환도 불가능하다.

직무급제 도입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명확한 직무분석이 선행돼야 하고,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서열화하는 직무평가도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지구적 차원의 경쟁이 일상화된 시대에 필수적인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직무급제는 절실하다. 경직된 임금구조가 고용시장을 왜곡시키는 상황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 확보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