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항공 한진칼 지분 4.3% 매입…경영권 분쟁 약화 전망에 주가 급락(상보)

델타항공 한진칼 지분 4.3% 매입…10%까지 확대 예고
조원태 한진 회장 일가, 델타항공 포함해 한진칼 지분 33.23% 확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한국경제 DB)
미국 델타항공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며 KCGI(강성부 펀드)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군으로 나섰다. 조 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 경영권 분쟁이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한진칼 주가는 21일 급락하고 있다.

델타항공은 20일(현지시간) 홈페이지 '뉴스 허브'란에서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칼 지분 4.3%를 확보했다"며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에드워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대한항공과의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합작사)를 통해 주주들에게 강력한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미국과 아시아는 잇는 최상의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며 "이번 투자로 JV 가치를 기반으로 한 대한항공과의 관계가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토종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가 조 회장의 경영권에 대해 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델타항공이 우군으로 나선 것으로 풀이했다. 미국 최대 항공사 중 하나인 델타항공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시절부터 대한항공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항공사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백기사(우호세력)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을 반기는 모양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JV 파트너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KCGI가 한진칼 지분을 16% 가까이 확보하며 조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델타항공의 지분 4.3% 매입 소식은 조 회장 측에는 호재다. KCGI는 지난해 11월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해 2대주주로 올라섰고, 지난달에는 지분을 15.98%까지 늘렸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지방법원에 '원태 회장의 선임 과정을 조사할 검사인을 선임해달라'며 경영권 분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하면서 조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家)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낮아졌다. 델타항공이 대한항공과 깊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회사 경영을 맡은 조 회장을 위협하는 방향의 의결권 행사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너가는 특수관계인 지분(28.93%)에 델타항공 지분이 더해지면 한진칼 지분 33.23%를 확보하게 됐다. KCGI의 두 배 수준이다. 델타항공이 예고한대로 한진칼 지분율을 10%까지 높이면 우호지분율은 총 38.93%로 확대된다.

델타항공은 대한항공이 참여해 2000년 출범한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멤버로 한진그룹과 돈독한 관계다. 지난해 5월에는 항공사 간 가장 높은 수준의 협력 단계인 JV를 출범시켜 양국 간 직항 13개 노선과 370여 개 지방도시 노선을 함께 운항하고 있다. 앞서 바스티안 CEO는 이달 1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과 조 회장을 직접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바스티안 CEO는 "대한항공과 조양호 전 회장은 우리의 오랜 파트너였다"며 "그의 가족들의 문제로 걱정하지 않는다. 새로 리더십을 행사하는 조원태 회장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미래 관계에서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KCGI의 경우 최근 금융가에서 투자금 확보가 어려워 지분 추가 매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CGI는 그동안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 대출을 받아 다시 주식을 매입해 지분을 확대했는데, 지난 11일 미래에셋대우가 주식 담보 대출 연장을 거절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판세가 조 회장에게 유리해진 만큼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한진칼 주가는 급락세다. 이날 오전 11시40분 현재 한진칼은 전날보다 4350원(10.77%) 내린 3만60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한준 KTB증권 연구원은 "한진칼에 대한 KCGI의 지분율이 확대되고 있는 과정에서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굳이 지분 투자를 했다는 점에 비춰 한진그룹 측의 우호 지분이란 해석이 자연스럽다"고 진단했다.

다만 경영권 분쟁 종결 관측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취득으로 조 회장 측이 KCGI와의 지분 경쟁에서 좀더 유리해졌다"면서도 "다만 여전히 소액주주의 지분이 많아 KCGI 측도 추가 지분 취득을 통한 반격이 가능하고 다른 요인들도 많아 승리를 확정지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사진=델타항공 홈페이지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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